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그래도 살맛 나는 세상

2008-09-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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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 헤드라인은 미국 금융시장 위기, 증시 하락, 펀드 반토막, 대공황 우려 등 심각한 세계 경제전망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평소는 그런 뉴스에 관심이 없던 우리 같은 서민들조차도 혹시 우리 가정에도 그 여파가 밀어 닥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며칠전, 식구들이 저녁 식사 후, TV앞에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엉뚱한 발상으로 자주 우리를 놀라게 하는 둘째 딸 아이가 불쑥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만약에 어떤 사람이 10만달러와 1만달러를 아빠 앞에 놓고, 10만달러를 선택하면 그 돈은 모두 아프리카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쓰일 것이고, 1만달러를 선택하면 그 돈은 아빠가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빠는 어떻게 할 거야?”


갑작스러운 황당한 질문에 선뜻 답을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평소 작은 딸아이의 엉뚱함에 실소를 흘리곤 했던 큰 딸아이가 나서 “그렇게 질문하면 아빠 대답은 뻔하니까, 질문을 조금 고치자”면서 “만일 우리 집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당장 1만달러가 꼭 필요할 때 그런 제안이 들어왔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할 거야?” 하면서 한 술 더 뜨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도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는 경제 뉴스에 영향을 받은 엉뚱한 발상이었겠지만,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순간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작은 딸 아이의 질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가정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시킨 큰 딸 아이의 질문은 간단히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월드비전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영웅(?)으로서의 위치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요, 가장이라는 위치 사이에서 심히 고민되었습니다.

장고 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 가정의 심각성과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지를 더 고민해보겠지만, 전혀 다른 방도가 없이 우리 가정이 힘든 상황이라면, 아마 나는 1만달러를 택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너희들과 우리 가정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지.” 결국 아빠의 위치를 선택한 것입니다.

대답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둘째 딸 아이가 “휴! 아빠도 그렇구나? 나는 나만 그럴 줄 알았는데.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구나. 근데 걱정마.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면서 킬킬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고는 제 딴에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아이의 킬킬거림에는 분명 안도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선택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일 것입니다. 만일 그런 제안이 막상 닥친다면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와 같은 현실적인 결정을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나눔은 그런 ‘도 아니면 모’의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아주 작은 것을 나눌 것을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상대적인 것이지요. 매주 하던 외식의 기회가 월 1회로 줄어드는 어려움, 철마다 구입하던 의복을 구입하지 못하는 어려움, 아이들 용돈을 줄이는 어려움 등등….

저희 월드비전에 전화를 거셔서 최근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후원 중단 통보를 하셨던 어떤 후원자님께서 약 10분 후에 다시 그것을 철회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전화를 끊고나자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다시 전화를 합니다. 나는 그래도 끼니를 거를 정도는 아니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냥 계속 후원을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고, 우리의 허리를 졸라매는 세상이 온다 해도 이렇게 따뜻한 나눔의 천사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맛납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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