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마지막 강의와 시한부 인생

2008-09-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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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응급실(ER)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6년이 넘었다. 아내는 응급실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돌아온 날은 항상 이런 저런 사건보고(?)를 나에게 해야 환자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다. 그래서 병원에서 돌아올 시간쯤이면 물을 끓여놓고 차 한 잔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곤 한다.

그동안 아내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면 미국사회의 흥미진진한 단면이 그려질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약과 약물, 알콜 중독에 빠져 있는지,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모르고 배가 아프다며 응급실을 찾아왔던 10대 소녀, 비오는 날만 되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심장통증을 호소하면서 응급실을 찾는 노숙자 단골환자, 애인에게 총격을 당하고 도망쳐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던 사랑의 변절자, 바이아그라를 과도 복용했다가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고통 속에 응급실을 찾은 골빈 젊은이 환자 등등….

그런데 응급실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때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대할 때라고 한다. 특별히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할 가능성을 보이는 환자들은 그 자리에서 치료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행동과 폭언을 해 대할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


“요즘에는 왜 이렇게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오늘만 해도 2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응급실로 실려 왔어.” 이중 한 명은 아직 10대였고, 다른 한 명은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고 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본다. ‘왜 저들은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까?’

얼마 전에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47세의 대학교수 랜디 포시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생명을 살게 되면서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를 위해 죽은 후에도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강의를 하기로 한다. 강의를 통해 그는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죽기보다는 하루하루 즐겁고 기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죽기로 작정했다며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인지에 대한 강의를 한다.

그 강의는 사랑하는 3명의 어린 자녀와 아내에게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줄 것을 당부하는 공개 유언서였다.

유투브(Youtube)에 올려진 그의 강의 동영상은 클릭수가 1,000만회를 넘어섰고, 그의 책 ‘마지막 강의’는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꼽혀 이미 한국어판으로 번역이 되었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강의를 했던 포시 교수는 결국 10개월만인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강의를 통해 남긴 교훈은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별히 삶의 소망을 잃고 자살 일보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 포시 교수의 강의를 듣고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지 못한다. 다만 포시 교수는 언제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고, 보통 사람들은 그때가 언제인지를 모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매일 아침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열심히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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