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직분 은총

2008-09-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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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 중에 병리의사 한 분이 있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무서움을 잘 탔다는 친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미국 와서 병리과 의사가 된 이후부터 상황이 바뀐 것이다.

본래 병원마다 시체 해부실은 지하에 있다. 병원에 들어와 원인불명으로 갑작스레 죽게 되면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사체 검안과 해부를 하게 될 경우가 생긴다.

그때마다 병리과 의사인 내 친구는 조수 한 사람을 대동하고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사체 해부실에 내려가 한밤중에도 사체를 검시하고 해부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전혀 겁이 안 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직분 은총’ 아닐까. 사람 본성으로는 하기 힘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말이다.

알고 보면 존재하는 만물은 나름대로의 소명을 지니고 있다. 선생은 가르치고 군인은 국방을 지킨다. 의사는 병을 고치고 정치인은 나라를 다스린다. 상인은 물건을 판매하고 농부는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식물과 동물도 마찬가지다. 꽃은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과일나무는 열매를 맺어 인간을 먹인다. 새는 노래하며 아침을 알리고, 개는 짖어 도둑을 막는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내신 창조주의 뜻이다. 그분의 뜻이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직분 은총도 함께 받는 모양이다.

비단 먹고사는 직업뿐만 아니라, 부부나 가족 사이의 관계성도 마찬가지다. 전혀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결혼하여 남편과 아내가 되면, 그들 또한 ‘직분 은총’ 때문인지 한 몸이 되어 어려움조차 잘들 헤쳐 내며 살아간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직장이라 할지라도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생각하며 기쁘게들 일터로 나서기에 말이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모 직분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요즘 세상에 자녀 키우기가 힘들다 해도, 부모는 기쁜 마음으로 자녀를 낳아 행복하게 기른다. 억지로가 아니라 때로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말이다.

언젠가 신부님 한 분이 쓰신 글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두 눈을 잃고 봉사가 되었단다.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랫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마음의 문까지 닫고 살았다.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는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안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가가 청년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그 제안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한쪽 눈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여러 날을 두고 아들에게 매달려 애원하는 어머니의 간청 때문에 청년은 마지못해 알지 못하는 사람의 한쪽 눈을 기증받기로 결심했다.


수술 후 며칠이 지나 붕대를 풀고 기증받은 한쪽 눈으로 앞을 본 순간, 아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자기 눈 앞에 한쪽 눈이 없는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시 어머니는 놀란 아들을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야, 실은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장님이 된 내가 네게 큰 짐이 될 것 같아 우선 한쪽밖에 못 주게 됨을 부디 이해해 다오.” 사람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바로 하느님이 주신 직분 은총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성직자나 수도자도 매한가지다. 인간의 힘이 무엇이라고 한 번 사는 전 생애를 다 내어주고 살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 그 직분 은총을 ‘성소’(holy calling)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힘든 소명이다. 시멘트벽보다도 더 단단한 사람의 돌심장을 녹여 부드러운 살심장으로 만드는 일은 분명 사람의 능력 밖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따른 계획 안에서 받게 되는 ‘직분 은총’이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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