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운전중 잡담 금지

2008-09-12 (금)
크게 작게
운전하면서 셀폰 통화를 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하니, 이젠 모두들 귀에다가 보청기 같은 걸 꽂은 채 걸어 다닌다.

저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점잖게 보여서 아아, 예예,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하려고 보면 외계인처럼 귀에서 번쩍번쩍 푸른 불빛이 나오고 있다.

안 쓸 때도 귀에 꽂은 기기에서 작은 라이트가 점멸하는 모양이다. 이름도 괴상하기도 하지. 블루투스란다. 나 같은 이빨장수 귀에는 ‘투스’란 단어가 더욱 이상하게 들린다.


블루투스라는 말을 몇 년 전 단골 셀폰 업체 직원에게서 처음 들었다. 무엇이라구요? 나는 그 직원이 나에게 치과상담을 하는 줄 알았다. 무식하기도 하지.

사실 옛날 백과사전에는 실리지도 않았을 이 단어는 무선접속을 가능케 한 첨단 기술의 코드 이름이다. 천년 전 쯤에 덴마크인지 노르웨이인지 한 유럽의 왕이 빠진 이빨 대신 상아로 깎아 만든 가짜 이를 해 박았는데 그 가짜 이빨에다가 당시 염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파이어 색깔을 입혔다나. 블루투스라는 단어의 유래이기는 한데 그것이 첨단기기와 무슨 상관인지 나는 모르고 있다.

아무튼 이 블루투스 때문에 내 오피스에 온 환자 한분을 처음엔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서 혼자 허공에다 대고 말을 하기도 하고 낄낄 웃기도 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상하지 않았겠는가.

나중에 디지털 세대 간호사들이 가르쳐주어서 오해를 풀었다.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당했다. 상대편 운전자는 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운 채 후진으로 주차를 하려다가 내 차를 받았다.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빵빵’ 경고를 줬는데도 셀폰 때문에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쾅! 부딪는 소리는 들었는지 자기 차에서 내려 내 앞으로 오는데 아직도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다. 상대편 사나이가 내게로 다가오면서 붙들고 있는 셀폰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오케이 오케이, 시간당 십 달러, 오케이! 내가 오늘 밤에 그리로 갈게! 오우! 노 쁘로블레마!!”

나는 그대로 내 차에 앉아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하는 그 사나이의 이빨을 쳐다보았다. 맙소사! 옐로투스다. 태어나서 한 번도 스케일링을 받은 적이 없을 것 같다. 쯧쯧.


블루투스는 없지만 소위 블루컬러인 모양인데 보험은 들었을까? 내 차는 누구에게 보상을 받나 걱정된 마음과 양쪽 다 안 다쳤으니 그나마 감사하다는 마음이 교차한다. 오른 뺨에 왼뺨 마저 내주라는 성경 구절도 떠오른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크리스천다운 행동일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내 전화를 끊은 상대 운전자가 나에게 냅다 고함을 지른다. “왜 내 차를 받냐? 왜 내가 가려는 방향을 방해하냐? 너 어떡할래?”

아이구, 하나님, 가만히 있다가 당한 저더러 잘못했다네요.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도 블루투스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별 걱정을 다 해준다. 세상은 아무리 잘난 체 혼자 고고함을 지키려 해도 이렇게 얽히고설켜서 먼지를 묻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먼지 많은 세상에서 크리스천답게 살아가기, 그것이 어려울 뿐이다.

김 범 수 (치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