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잘 살아야 잘 죽는다

2008-08-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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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그리스 최고의 작가이며, 걸작 ‘희랍인 조르바’를 남긴 ‘지중해의 바람,’ 니코스 카잔차키스(1885-1957).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원하는 것이 없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인이다.”
무엇에 애달피 집착함이 없으니 괴롭고 두려울 것이 없어, 자신의 삶은 물론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를 깊이 천착한 작가로서, 진정 법다이 살다, 법다이 떠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날 현대인들의 신흥종교라고까지 일컬어지기도 하는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이 지구촌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행하고 있습니다. 웰빙이라는 말은 좁게는 잘 살기 위한 식생활과 건강 문화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참살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번역된 웰빙이란, ‘참다운 사람살이’ 또는 ‘진실한 삶’ 등 보다 폭넓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 웰빙 문화에 이어 요즘은 ‘웰다잉’(well-dying)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웰다잉 문화가 새로운 시대풍조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웰다잉이란 문자 그대로 잘 죽는 것, 즉, 두려움 없이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래서 아름답고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웰빙과 관련해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바로 이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것이며,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을 수 있는 것이기에 죽음은 우리에게 평등합니다. 다만,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죽음 앞에서 그야말로 적나라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 앞에서면, 두려움에 떨거나 절망하며, 또는 한없는 슬픔에 젖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 살이’로 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온 사람은 죽음을 현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여유 있는 모습과 밝은 마음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듯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웰빙을 웰다잉과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웰다잉은 웰빙의 완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잘 살아야 잘 죽는다.’ 달라이라마께서도 우리가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인도의 현자 오쇼 라즈니쉬는 ‘종교란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과학이요 예술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가. 불가에서는 ‘거머쥐고 말아 쥔 게 웬만하거들랑, 닫아 건 마음 곳간 열 줄도 알면서 살아라’ 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는 쉬워도, 한 마음 돌려 ‘그것을 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불가에서는, 그것을 참다이 살기 위해서는,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열린 마음으로 사는 연습을, 하염없이 하라고 당부합니다. 열린 마음은 모든 마음 병의 원인인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空)을 설한 금강경은 금강석 같은 이런 소식을 전합니다. ‘마땅히 머물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박 재 욱
(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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