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웰빙이야기- “님의 침묵”

2008-08-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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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이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은 ‘만해’ 한용운의 시이다. 그리고 그의 첫 시집 제목이다.


독립선언서에 공약 3장을 추가하고, 3.1운동 선언서를 낭독한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른 그는 줄줄이 창씨개명을 한 민족 지도자들이 젊은이들에게 학병을 강요하며 일본 전쟁터로 내모는 변절을 한탄하면서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뜨거운 불길을 주체하지 못해 쓴 시가 ‘님의 침묵’이다.

그의 ‘님’은 자유와 평등과 독립이다. 그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욕망을 참고 남과 나란히 가려는 평등 또 민족 스스로가 기회주의를 부인하고 게으름에서 벗어나 단결을 공고히 할 것을 촉구했다. 그래야만 스스로 설 수 있고 님의 침묵은 깨질 것이고 독립의 서광이 비칠 것임을 알렸다.

‘님’을 뜨겁게 절규하기 위해 시인이 되었고, ‘님’의 참 모습을 찾기 위해 스님이 되었고 배달민족으로 ‘님’의 품에 안기기 위해 독립 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은 마지막 끝나는 날까지 2천만 동포와 같이 고통을 나누며 민중의 편에서 대쪽보다 곧고 강하게 살았다.

애 타게 기다리던 독립을 한해 앞둔 1944년 6월, 못내 님의 침묵을 깨지 못한 채 병고에 시달리다 가신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요 광복의 밑거름이었던 만해 한용운을 63회 광복절에, 그를 기리며 그에게 감사드린다.

김준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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