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우리 부부의 작은 논쟁

2008-08-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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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내려온 지 어언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중 한 달은 남편의 직장에서 마련해 준 호텔에서 머물며 집을 고쳐주실 분들을 찾고 만나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다른 한 달은 집을 고치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은 지갑에 돈처럼 몸에 힘이 빠져가듯이 점점 지쳐가지만 그래도 우리 인생에 첫 번째 집이고, 낡은 집이 점점 예뻐지는 모습에 보람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아이였다. 가장 먼저 벌써 두 달 째 부엌이 온전치 못한 관계로 영양 면에서 걱정이 되고, 다음은 이사 준비 전부터 지금까지 아이가 차분히 앉아 공부를 하거나 책을 가까이 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해 어느새 나는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그러며 바로 지난 화요일 짐이 오자마자 다급한 마음에 아이 책이 담긴 상자부터 열어 아이가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우리 거실에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책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짐 정리를 하며 지친 나는 아이에게 나이에 맞는 책부터 먼저 읽으라고 지적을 하며 못마땅해 하자 그 때 어김없이 남편이 나섰다. 이 잡지책은 원래 그림을 보며 배우는 책이라고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보고 느끼며 배우는 책이라며 이 책이 바로 아이에 맞는 책인데 왜 못 보게 하냐고 내게 핀잔을 주었다.

아이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아이 편을 들며 끼어드는 남편의 모습에 당혹스러워 내 변명을 먼저 해 나갔지만 나는 곧 아이와 남편 앞에서 내가 조급한 마음에 잘 못 말한 것이라고 인정을 하였다. 조급한 내게 남편이 말한다. 여덟 살 남자 아이는 노는 것이 정상이고, 놀아야한다고. 자신도 여덟 살 때는 하루 종일 친구와 뛰어 놀았다며 성준이는 지금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러며 집을 고치느라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고 아이에게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내게 남편은 또 말했다.

“성준이는 지금 쉬 볼 수 없는 집 고치는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배우고 있어. 매일매일 다른 분야의 전문가 선생님들이 집을 방문하셔서 전기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 집 지하와 지붕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하수도의 연결이 어찌 이루어지는지 앞마당에 잔디는 어떻게 심어지는지 벽돌은 또 어떻게 쌓여지는지 등등 보여주시잖아. 우리에게는 그저 집 고치는 일일 지 모르지만 그 작은 눈에는 하루하루 얼마다 다양하고 멋진 일들이 펼쳐지고 있을지 생각해 봐. 성준이는 하루하루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우고 있어. 우리는 아이에게 가장 훌륭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 나는 지금 성준이가 플러밍에 관심을 보이고, 팔이 다치신 대니 아저씨를 걱정하고 보고 싶어 하고, 목수 아저씨를 좋아하고, 목수 아저씨를 따라 벽돌을 쌓으며 방학을 지내는 모습이 좋아.”

작은 논쟁 후 남편에게 듣는 말이 모두 내 마음을 끄덕이게 만들었다. 아이 앞에서 나의 말을 가로질러 섰던 남편의 모습에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남편의 말이 모두 맞다. 이럴 때는 좀 당혹스러워도 괜찮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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