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이민이라는 광야

2008-07-12 (토)
크게 작게
광야의 식물들에는 대체로 가시가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과 알로에처럼 살이 올라 있지는 않지만 같은 과의 그것들이 그렇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뒹굴며 다니는 덤불위드는 평균 20만개의 씨앗이 달리는데 씨앗과 잎이 모두 가시입니다. 들풀처럼 자라나는 밀과 귀리, 그리고 아욱의 조상들도 가시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비름나물조차도 자라면서 씨앗이 생기는데 그것이 가시입니다.

과일나무에도 가시가 많습니다.


사막 식물들이 대체로 가시가 많은 이유는 사막의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을 최대한 흡수하고 배출이 최소화 하기위해 오랜 세월 그렇게 변화하며 적응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변화했을 것입니다.

인생살이에도 이런 광야생활이 있습니다. 인생을 고통의 바다와도 같다고 하신 석가의 말도 인생살이가 광야와 같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광야는 삭막합니다. 그리고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생존이 보장되어 있질 않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삭막하고 홀로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광야와도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스스로 서지 않으면 안 되기에 몸부림치며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광야의 삶이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뿐더러 나를 해치고자 하는 상황이 광야의 삶인 것입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괴롭고 아프고 그로인해 외롭고 고독한 상황이 계속되면 그것 또한 광야의 삶인 것입니다.

이민생활은 또 다른 형태의 광야생활입니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가시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시가 자기도 찌르고 남도 찌르는 걸 모르는 채 살아가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달픈 광야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민 생활 자체도 쉽지 않을 텐데 광야생활은 우리들의 가족을 해체시키기도 하고 사업마저 황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민교회가 힘들다고 하는 것도 가지고 있는 가시로 서로가 서로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내게 가시가 있는 한 다른 이들을 안아 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국제 결혼하여 미국에 오신 분들의 상황은 더더욱 어렵고 힘든 광야생활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를 뿐 아니라 이전에 살아왔던 방식을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 즉 광야생활이 가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은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 부풀게도 합니다. 하지만 목표 없는 새로운 삶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하는 것입니다. 가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가시를 부드러운 잎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뜻하고 습도가 있는 열대의 식물들은 대체로 가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삭막한 우리들의 마음이 따뜻한 사랑으로 촉촉이 젖을 수만 있다면 광야의 가시는 더 이상 우리에게서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삭막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가시가 많아서인지 남편을 여럿 바꾸며 살았는데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자기에게 있는 가시로 자기도 찔리우고 다른 사람들도 찔렀을 것입니다.

이분이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께서 그 여인의 내면에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아프게 하고 남도 아프게 합니다. 이 가시를 없애기 위해 외형적인 부분을 화려하게 하려고 하지만 가시는 점점 단단해지고 내면은 점점 공허해 집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가시를 부드러운 잎으로 바꾸어, 내 인생과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 줄 것입니다.

조규백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