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들여다 보기- 휴가철과 일중독

2008-07-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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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다. 그런데 할일이 많아 이번 여름도 휴가 낼 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일중독에 빠져있나’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일중독은 가장 눈치 채기 힘든 중독증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돈을 더 벌게 하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게 하는 생산성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중독은 몸과 마음을 조용히 탈진하게 만들고 행복한 가족의 삶을 해체시킨다.

일중독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일중독자인 줄 모른다. 자신이 일하는 것은 자아실현일 뿐 아니라 일을 통한 성취감을 즐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중독에 걸리면 오히려 쉬는 것이 더 힘들다. 일중독자에게 주말은 방해받지 않고 맘 편히 일할 수 있어서 더 좋은 날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할 자세가 되어있어 가족과 휴가를 가도 자신은 컴퓨터와 셀폰에 매달려 업무를 처리한다. 일 때문에 여름휴가를 못 간다고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휴가 갈 타이밍이 안 맞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종종 배우자와 아이들만 휴가를 보내고 자신은 일하며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중독에 걸리면, 손에서 일이 떨어지는 순간, 안전부절 불안감이 밀려온다. 하루의 일과를 빽빽하게 짜놓고 일을 처리해가는 즐거움외에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떤 사람들이 일중독자가 되는가? 원인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 책임을 지게 되어 돈과 부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긴 사람이나 완벽을 추구하거나 성취 지향적인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과 위협감을 느낀다. 일을 못한다고 계속적으로 비난받거나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고 강박을 당한 사람, 자신의 능력을 과장되게 생각하는 사람, 무엇인가 성취해야 가치를 인정받는 환경에 있던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기 위해 일에 매달린다. 또,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 바가지 ‘A’는 배우자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사람도 일중독이 되기 쉽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가장 좋은 핑계거리를 가지고 불편한 배우자를 눈치 못채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중독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무기력함이나 우울, 공허감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술이나 마약이나 쇼핑대신 일을 택하여 중독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 혹은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과 일중독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성취 위주의 사회 환경이 일중독을 부추기며 사람들을 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한다. 결국 일중독은 마음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균형지게 조절하지 못하고 건강하게 쉬지 못하는 불건강한 마음의 증세이다.

일중독 증세에 대해무조건 행동을 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타인의 질타를 받을수록 그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더 일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일중독은 무엇보다 ‘당신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심각한 일중독으로 몸과 마음과 가족관계에 해체를 느끼는 사람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독에 매달리는 여러 가지 깊은 원인들을 진단분석하고 전문적으로 치유받아야 한다. ‘과유불급’,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말이다. 일과 휴식이 적당하게 균형 잡힌 건강한 삶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다.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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