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택 한파 중에 웬 투기?

2008-07-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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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매물을 잡아라” 벌쳐 투자자들 활기
차압 콘도·빈집 대량 매입 전문 투자사서 부터
일부 개인들도 발 빠르게 가세… 큰 손들은 관망
은행차압 재고 떨이할 연말이면 더 큰 기회

상처받고 피 흘리는 짐승이 죽음에 이르면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독수리가 주위를 까맣게 에워싼다. 아프리카 정글의 살육 현장을 보는듯한 장면이 지금 주택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택 시장이 죽을 지경으로 하락하자 사체 독수리 투자자(vulture investor)들이 폭락 부동산을 삼키기 위해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 투기적 투자자들은 주택 가격이 이젠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판단 하에 폭락한 주택, 콘도 등을 거침없이 매입하고 있다.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던 이전 모습과는 달리 공격적이다. 전문 투자회사들은 폭락지역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차압 주택이나 콘도를 수십 채씩 대량으로 매수하고 있고, 일부 개인들은 헐값에 건져 약간의 이익을 붙여 되파는 발 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택 붐이 뜨거웠던 시절에 봤던 단기 전매 차익 투자가 엄동설한에 이뤄지고 있으니 놀라울 정도.
이들이 적극 매입에 나서는 이유는 주택 가격이 크게 하락해 투자를 해도 손해를 볼 가능성은 적고,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크다고 보기 때문. 워낙 싸게 매입하기 때문에 당분간 세를 주고 기다려도 손해 볼 것 없다는 판단이다.
주택가격이 지난 12개월 사이 27%나 폭락한 사우스 플로리다에서 영업하는 한 브로커는 3 가구 다세대 주택을 6만 5,000달러에 매입했다. 19만 5,000달러에 리스팅 됐던 집인데 셀러가 사정이 급해 던지다시피 한 물건이었다. 워낙 싸게 매입했기 때문에 3가구를 세를 주면 그 수입만해도 모기지 페이먼트를 내고도 남는다. 이 브로커는 당분간 세를 주고 기다리다가 주택 시장이 회복되면 팔아 큰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동산 현장에 몸담고 있는 그는 “재빠른 투자자들은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고 전한다.
폭락지역이 아닌 경우에도 단기 전매 차익을 노리는 투자는 제법 활발하다. 집값이 소폭 하락했을 뿐인 시애틀. 3명이 합세한 한 개인 투자 팀은 올해 시애틀 외곽에서 집 4채를 매입해 이미 상당한 재미를 봤다. 방 4개짜리 한 저택은 원래 가치보다 30%나 할인된 30만달러에 매입한 뒤 바로 되팔아 약간의 이익을 올렸고 그 뒤 8만달러에 산 주택은 시장가에서 55%나 할인해 산 덕분에 바로 전매해도 6만달러나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다른 두채는 당분간 세를 주고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 계획이다. 2~3년 기다렸다가 팔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도매금 대량 투자도 활발하다.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콘도 벌처’사는 콘도 대량 매입이 전문인 업체. 이 회사는 최근 템파에서 대형 콘도 단지를 헐값에 사들여 떨이 매입의 진수를 보여줬다.
콘도 개발 업체가 지은 뒤 팔지 못해 파산하고 은행으로 넘어간 149유닛을 1,200만달러에 매입했다. 은행이 갖고 있던 2,100만달러 론을 43%로 할인해 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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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주에서는 더 심한 헐값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 소재 이코노홈스라는 부동산 투자사는 은행 소유 주택을 매입해서 그냥 또는 약간 고쳐서 되파는데 한번에 5채에서 50채를 매입한다. 많은 경우 물건을 보지도 않고 매입하기 때문에 미납 세금이나 전기료 등으로 수 만 달러를 추가 부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빨리 싸게 사서 빨리 처분한다는 것이 이 회사의 모토다. 최근 2년간 주로 오하이오와 미시간주에서 버리고 간 집을 500여 채 매입했는데 매입가는 평균 5,000달러였다. 클리블랜드와 디트로이트에서는 3,000달러에 산 빈집들도 있었다. 이렇게 떨이 매입한 집들을 평균 25,000달러에 팔아 큰 이익을 거뒀다.
로컬 정부에서는 버리고 간 집을 줍다시피 했으면 좀 고쳐서 팔아야 지역이 살아나는데 전매차익만 챙기고 지역 회생에는 기여를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떨이 전문 업체들은 수리해서 팔려다간 값이 올라 아무도 사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단지 새로운 주인이 빈집에 들어온다는 것 만해도 마약딜러나 도둑 소굴로 변하는 것을 면할 수 있다는 항변이다.
떨이 투자가 활발하지만 다수의 큰손 투자자들은 아직은 대량 매입에 적극 나서지는 않고 있다. 더 떨어진 다음에 행동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주택 가격 하락이 계속되고 있고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는 내년까지 두자리 숫자의 추가 하락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높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않겠다는 자세다.
이들은 은행들이 손을 들 때 더 좋은 바겐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20만달러 하던 것들이 13만달러에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바이어가 지불하려는 가격과 은행이 넘기고자 하는 가격 사이의 격차가 크다. 차압 주택이 쌓인 캘리포니아는 특히 그 격차가 심하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 스리 아크 인베스터스사는 캘리포니아에서 지난 12개월 사이 가격이 35%나 폭락했지만 아직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2억5,000만달러의 벌쳐 펀드를 조성하여 추가 하락시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애리조나의 차압 주택에 투자할 계획이다.
대형 투자사들은 은행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고 버티고 있으나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는 차압 주택들을 조만간 처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이 손실 회계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올 연말을 즈음해 청산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진 차압 매물이 봇물을 이룰 것이란 전망이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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