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6-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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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사를 따라다닌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큐사인을 주던지… 소리 소문 없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 다니니 이거 미칠 지경이다. 그것에 반해 승욱이는 너무 자연스러우니 아니 너무 여유로우니 우리 식구들이 더 돌아버릴 지경이다. 친정언니는 밥 먹는 장면을 촬영하고(밥 먹는 중에도 인터뷰를 한다) 위장에 탈이 나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아침에 언니 얼굴을 보니 초췌하다 못해 휑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하고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카메라가 무서워서 못살겠다. 저녁에 촬영팀과 식구들이 카메라를 치우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우리 친해집시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야지 카메라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린 한국식으로 통성명을 다시 하고 각자의 호구조사 “사는 동네가 어디세요? 몇 학번이죠? 방송국 이야기 좀 해주세요.” 뒤이어 “깔깔ㄹㄹㄹ. 호호ㅎㅎㅎ” 하룻밤 사이에 우리 모두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양 다 친해졌다. 촬영팀이 언니와 동갑내기여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음날부터 좀 더 자연스러움과 진지한 인터뷰로 모든 컨셉이 바뀌었다. 카메라는 돌고돌고돌고. 필름은 계속 나오고 있다.

식구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오후시간을 보내는 것을 찍고 있는데 승욱이를 밀착해서 따라 다니는 카메라 감독님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나에게 뛰어온다. “승욱이 어머니! 촬영 못하겠어요. 이거 너무 이상해.” “네~에? 뭐가 이상한데요. 필름이 없어요? 사오라고 할까요?” “아니, 애가 3중장애가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미국으로 왔는데 너무 이상해요. 승욱이 정말 못 보고 못 듣고 말 못해요?”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 네. 3중장애 있는 거 맞는데요.”

“카메라 앵글 안에서 보는 승욱이는 장애있는 애 같지 않아요. 이것 봐요. 못 본다고 더듬거리기를 하나, 못 듣는다고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갖나, 말 못 한다고 성질을 부리나. 도대체 여덟살짜리 정상애하고 별 차이가 없잖아요.” “뭐라구요? 앵글을 멀리 잡으니까 장애가 잘 안 보이는 거 아니에요? 가까이 보세요. 애가 눈도 장애가 딱 있어 보이고, 귀에는 와우장치를 달고 있고 입에서는 전혀 사람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잖아요. 뜨문뜨문 찍지 말고 정밀하게 찍어 봐요. 네?” “아. 참. 제대로 찍어가야 하는데 이거 3중장애 승욱이 스토리 기획의도 바뀌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다시 승욱이에게 뛰어가는 우리 카메라 감독님. 가면서도 “애가 장애가 있기는 뭐가 있어. 정상 같구먼.”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이 핑~ ‘고맙습니다. 감독님. 남들은 다 승욱이의 장애를 보고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는데 감독님은 정상애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해주시니 엄마인 저는 너무 감동입니다. 감사해요.’ 열심히 승욱이를 따라다니며 나에게 가끔씩 던지는 말 “정상이야~~ 정상~~ 여덟살짜리 평범한 아이를 내가 지금 찍고 있다구.”

그렇다. 촬영팀 모두가 승욱이를 3중장애를 가진 특별한 장애우로 보지 않고 8세 정상아이로 승욱이를 봐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일 밤 아이들과 놀아주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땐 승욱이를 즐겁게 해주니 오래간만에 집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저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목메는 사람들로 생각했었다. 인간미보다는 끈끈한 정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보다는 시청자의 평가에 더 치우쳐 생각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우리 집에 와 있는 철인 촬영팀으로 인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고 얼마나 배려해 주는지 서로가 편하게 촬영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이 승욱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식구들도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고 있다. 가식 없이 꾸밈없이 그저 우리네 사는 일상의 모습 그대로 담아지고 있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왜 승욱이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천사일까? 천사는 천사를 따라다니나? 그래. 천사는 천사를 따라 다닌다. 민아생각^^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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