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불씨

2008-06-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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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성에서 진도 8.0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지난 5월12일 이후 약 3주 동안, 저는 월드비전의 아시안 후원개발 책임자로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론의 속보에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400여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원들의 긴급 메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미국내 모든 중국인들에게 “여러분의 모국이 수십년 내 가장 큰 재난에 직면했습니다.

작은 사랑을 보내십시오”라고 긴급호소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인 직원만으로 구성된 저희 부서로서는 무척 벅찬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중국어, 한국어, 영어에 능통한 중국인 자원봉사자를 때맞춰 찾았고, 그 후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중국인 후원자들에게 후원요청 편지를 보내고, 보도자료를 미국 내 중국 언론들에 보내고, TV와 라디오에 호소 광고를 만들어 보내는 일까지 급박하게 수행했습니다.

긴급구호 사역이 유기적 시스템을 갖추고, 중국인 후원자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질 무렵, 사전에 약속된 월드비전 행사 때문에 뉴욕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출장 중에도 관심은 온통 중국에 쏠려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저도 사람인지라, 한꺼번에 여러 일을 집중 처리하다보니 심신이 파김치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몇 주를 내리 남편과 아빠 없이 주말을 보낼 가족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내 일이 정말 세상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는 일인가’ ‘이 모든 수고가 단지 일회용 도움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등 내 삶의 목표를 흔드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피곤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뉴욕 공항에서 시애틀행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무심결에 구입한 타임지에 난 기사를 읽다가 가슴 속에서 다시 저를 일깨워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기사는 중국의 지진 구호현장을 취재한 것이었습니다. ‘재난이 일깨운 것들’이라는 제목의 중국인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무려 20만이 넘는 봉사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먼 거리를 마다않고 달려와,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구호품을 나누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미국 등 자유 선진국에서는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오랜 공산 치하에서 개인의 선택이 제한된 중국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재난지역을 돕는 것은 전적으로 군대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한 자원봉사자는 “우리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가족, 친척, 친지 간에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합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세계 각국 후원자들의 도움을 보면서 동족이 구경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닌, 대다수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중국의 소리였습니다. 봇물 터진 자발적 봉사의 발길을 정부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언론은 연일 그들의 활동을 보도하고,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무 연고도 없은 중국인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제공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자극 받아 역사적 자원봉사를 시작한 사람들…. 이야기의 끝은 무엇이겠습니까? 기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The country will never the same.” 즉, 중국이라는 거대 공산국가가 변화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작은 도움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나라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나눔, 그것은 한 개인을 돕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와 나라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일의 시작입니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피곤이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이 글이 실릴 무렵 저는 아마 전화를 걸고 또 걸어 도움을 호소하는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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