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은 생애를 함께 할 수 있다면…

2008-05-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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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만 나흘 만에 건물더미 속에서 젊은 남성이 발견됐습니다. 기진맥진한 상태지만 팔을 움직여 보이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렸습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난 강해져야 합니다. 구조대원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난 기어코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발견 당시 이미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간신히 기력을 되찾은 이 남성은 전화를 빌려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는 아내와 극적인 통화를 했습니다.

“내 삶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아. 그러나 당신과 내가 남은 생애를 함께 할 수 있다면 나는 너무나 행복할 것 같아.”

그러나 이 남자는 끝내 아내와 남은 생애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시간이 걸린 끝에 구조는 됐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한국 언론에 소개된 중국 사천성 구조현장의 안타까운 모습 중 하나입니다.

목숨이 절박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남은 생애를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직감한 남편의 마지막 고백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런 이야기가 그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재난의 현장에서 너무나 흔하게 접하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통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의 삶 속에 하나의 의미가 되어 살아가던 내 부모, 자식, 형제, 자매, 이웃들이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 앞에 놓였을 때, 남은 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형언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주검이라도 보면 덜할 것입니다. 생사조차 알 수 없을 때의 피를 말리는 초조함과 안타까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보름 사이에 2건의 천재지변이 지구촌을 강타했습니다.


지난 2004년 쓰나미 재난 이후 다시는 그런 끔찍한 참상을 보지 않기 원했던 우리네의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사이클론 나르기스와 7.9의 대지진이 미얀마 양곤 지역과 중국의 사천성을 덮쳤습니다.

십수만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수십만명이 부상을 입고, 수천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자식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또는 아직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자식을 찾아 헤매는 부모들의 피맺힌 절규와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우리의 가슴을 온통 헤집어 놓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21세기는 개별 국가의 시대가 아니라, 지구촌이라는 한 마을 개념으로 상징되는 시대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 아니라, 내 이웃의 이야기라는 의미이지요. 강도 만난 자에게 아무 조건 없이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따뜻한 미소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이 시대가 또 다른 선한 사마리아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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