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아름다운 흔적

2008-05-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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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보면 좋은 일도 많지만 안타깝고 슬픈 일도 종종 만나게 된다. 좋은 일엔 함박웃음이 활짝 피지만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금방 기운이 빠지며 온갖 걱정과 시름에 밤잠까지 설치게 된다. 그런 연약한 틈새를 지녔음에도 늘 자신만만 모든 일에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리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춘삼월도 지나가고 어느새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어찌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날아가는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는 시간. 잡을 수는 없지만 지나고 보면 많은 순간 누군가가 보살펴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복이며 감사 조건이다.

며칠 전 안타까운 부음을 듣고 모든 일을 접어두고 한걸음에 달려갔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 특별한 사랑을 주셨던 귀한 목사님의 소천 소식에 별안간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마음이 무거웠다. 코흘리개 시절에 함께 놀았던 소꿉친구가 어느새 중년부인이 되어 있었고, 그 곱고 인자하셨던 사모님도 호호백발이 되셔서 유족 대표로 앉아계셨다.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나이 먹는 것도 잊었었는데 그립던 이들을 보는 순간, 그리운 그 옛날이 흑백필름으로 천천히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 교계의 거성으로 수많은 제자들과 후진들을 양성하신 귀한 목사님. 그 아름다운 흔적들이 이틀간의 장례식에서 뚜렷하게 증명되었다.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세워주셨는지, 얼마나 큰 사랑으로 많은 허물을 덮어주셨는지….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받은 이들이 눈물로, 기도로, 그 아름다운 삶을 고백할 때마다 옷깃을 여미며 다시 한 번 삶의 자세를 점검했다. 평소 아버님을 통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정하고 인생의 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놀라운 은혜와 도전의 시간이었다.

누구나 삶에 대한 아름다운 소원이 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고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처음보다 마지막이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인생은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태도를 점검받으며 살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멋진 사람이라고 외친다 해도 가장 가까운 지인들이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다시 점검받아야 하지 않을까? 나의 작은 말 한 마디가 그 소원을 막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니 말을 하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얼굴 표정, 아주 잠깐 보이는 미간의 찌부러진 근육들, 물건을 주고받을 때의 손놀림과 몸짓까지도 함께 버무려져 미래의 소원들을 이루게도 하고, 멈추게도 한다. 심지어 안 보이는 마음의 생각까지도 무의식중에 우리의 행동 중에 나타나면서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러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본인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고 내가 내뱉은 말에 작은 핑계와 이유를 대는 일이 부끄럽게 된다. 결국 내가 생각한 대로 말하게 되어 있고, 말한 대로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리라. 흔적은 한 발자국부터 시작된다. 지금 이시간의 태도도 이미 인생의 흔적 속에 새겨지고 있다. 오늘 내가 하는 모든 태도들이 더해져 나의 마지막 순간을 한 단어로 나타낼 텐데…. 작은 흔적을 찍기 전에 나도 모르는 나의 맘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를 시작한다.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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