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호 이타주의

2008-05-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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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들고 나온 이후에 진화론이 발전하고 유전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모든 생명체는 제한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하며, 그 과정에서 승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패자는 역사에서 사라져간다는 게 자연과학자들의 견해였습니다. 모든 생물은 본능적, 환경적 선택에 의해 살아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이 갈리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약육강식이 계속된다는 것이 진화론의 요지입니다. 거기에는 희생이니 양보니 하는 행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진화론의 흐름을 거슬러, 그렇다면 인간이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최근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 의문에 이론의 체계를 세운 학자가 미국의 로버트 트라이버스입니다. 그는 197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기적 이타주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의 이타주의는 ‘네가 나의 등을 긁어주면, 내가 너의 등을 긁어준다’는 호혜적인 행동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예로 물고기의 세계를 들었습니다. 아주 작은 물고기 종류 중에 반 정도는 큰 물고기들의 몸에 붙어 기생하는 생물들을 먹고 삽니다. 큰 물고기들의 몸을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큰 물고기들은 이 작은 청소군 물고기들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로버트 트라이버스의 이론은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인간은 약육강식의 진화론적인 존재로만 이해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계약이니, 교환이니, 양보니, 의무니, 지원이니 하는 어휘들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호혜주의 정신에서 나오는 언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 이타주의는 생물계 전반에서 다양하게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다시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호혜주의적 행동의 요인은 유전적인 것인가, 환경적인 것인가를 규명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영국의 동물학자 매트 리들리(Matt Ridley)가 2003년에 펴낸 ‘본성과 양육’(Nature Via Nurture)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유전과 환경, 혹은 본능과 교육으로 풀이되는 본성과 양육의 두 가지 이론을 역사적으로 충실하게 검토하면서 결과적으로 생물계, 특히 인간에게 나타나는 상호 이타주의는 본성과 양육이라는 두 가지 조건에 의해 상호 보완되어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삭막한 다윈의 진화론이 나온지 200여년이 지나서야 세계의 학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양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세계는 자원 전쟁에 돌입한 듯합니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급등하자, 건축의 기본자재인 철강값이 뛰고, 다시 이번에는 곡물값이 2~3배로 날고 있습니다. 원유와 철강 값이 뛸 때까지만 해도 다급하지는 않았는데, 곡물값이 급등하자, 매점매석이 시작되고 이제 세계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곡물가 불안심리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엔기구가 곡물가 안정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각국에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결국 세계는 인간의 상호 이타주의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쌀을 사재기하면, 결국은 쌀이 모자라지 않는 데도 세계는 비참한 굶주림에 빠져들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류는 생존의 한계자원이라 할 수 있는 곡물가의 폭등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진화론을 넘어 상호 이타주의 차원에 도달했으므로, 최근의 곡물가 폭등과 사람들의 사재기 욕구는 곧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모자라는 양식도 자제할 줄 알고 지혜 있게 나누어 쓰면 모든 파국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본성을 가졌고, 그렇게 양육되었습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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