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막달라 마리아가 막주라 마리아로

2008-04-25 (금)
크게 작게
신, 일상, 깨달음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준 책 ‘다빈치 코드’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결혼했다는 주장으로 의도적으로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뿐 아니라 현대 자유신학자 일부도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를 결혼을 했거나 동거한 것으로 추정하여 예수의 도덕성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데 이것은 정말 경계해야 한다. 성경이나 성경외적 근거 그 어느 것도 그들이 주장하는 예수님의 결혼설을 뒷받침할 만한 손톱만큼의 증거도 없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주장 역시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인가?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여인으로서 영락없는 보통 촌아낙네였다(마 27:55). 그러나 그는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다. 아마 도시의 허영을 찾아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는 그야말로 막 달라고 떼쓰는 인생을 살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누가복음 8장1-2절에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곱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욕심과 죄 때문에 귀신이 들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아 계속 더 달라고 정욕의 신을 쫓아가다 그만 귀신이 들리고 만 것이었다. 이런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오늘날 일곱 가지 욕심의 우상을 섬기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귀신으로부터 놓임 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가 되었다. 누가복음 8장3절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자신들의 소유를 모두 내어놓고 예수님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뤄 볼 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만나고 나서 ‘막주라’ 마리아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긁어모을 때는 만족이 없었고 오히려 귀신이 들렸었는데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내어 줄 때 기쁨이 오고 행복을 누리게 됐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단지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았기 때문에 고마움의 표시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귀신이 나간 자리에 예수의 영이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만으로는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없다. 텅 빈 마음에 행복을 공급하는 저수지가 파이프로 연결돼야 영속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예수 그분이 행복의 저수지라는 것을 안 이 여인들은 열두 제자들도 외면한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켰고,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향유를 준비했다. 무덤의 돌이 굴러가고 예수 부활을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을 외쳤으며 주님도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의 몸을 제일 먼저 보이심으로써 그녀의 믿음에 복을 주셨다(눅 24:10, 고전 15:5-8).

막달라 마리아와 무덤을 지킨 여인들은 부활의 현장에서 도망간 제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큰 소리와 물리적 자리 확보로 예수님을 따르던 남성적 믿음이 눈물로 예수를 따르는 감성적인 믿음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음을 알려 준다. 실패한 여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영광을 체험하게 된 것은 나눔의 기쁨이라는 비밀 때문이다.

김 홍 덕
(목사·조이장애선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