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 수 없이 왔다, 할 수 없이 간다

2008-04-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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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의 부처

‘괜히 애쓰지 마라.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 찰스 부코우스키(1920-1994)라는 귀에 낯선 작가가 세상을 등지면서 삐딱하게 두고 간 소리입니다. 그는 70년대 저항의 시대, 미국 대중문화 최고의 ‘아웃사이드 작가’로 평가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미국의 보수적인 문단에서는, 사회의 낙오자에 대한 배려 없이 무한경쟁만을 강요하는 기성체제 하에서, 괜히 애쓰며 살 일이 아니라고 강변하며, 기성의 질서와 권위를 조롱과 냉소로 잘근잘근 씹어놓은 그를, 반사회적인 이단아로 취급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가 어둡고 퀴퀴한 그의 작품 속에서, 바닥을 친 뒷골목 인생들의 입을 빌어 거침없이 쏟아낸 상스럽고 비루한 말 품새는, 오히려 통쾌한 배설의 해방감과 꾸밈없는 순수함으로 받아들여져, 독자들을 블랙홀처럼 강렬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입니다.


새로운 막일을 찾아 끝없이 유랑한 ‘잡노마드’로, 알콜과 섹스에 탐닉한 염세주의자로 세상과 숱한 길항(拮抗)의 삶을 살다, 생뚱맞게도 자신의 장례식을 어느 스님에게 부탁한 그는, ‘괜히 애쓰지 마라’는 당부로, 끝까지 세상을 향해 ‘꼬장’을 부리고 떠납니다.

그러나 괜히 애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괜히 왔다 갔다 하다, 그냥 가버린 스님이 있습니다. 걸레스님 중광(1935-2002). 장례식을 집전하는 자리에서, 망자가 법문보다는 노래를 더 좋아할 것이라며 ‘돌아와요 부산항’을 불러제켜, 조문객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는 스님입니다.

또한 취중, 자신의 배설연장에 붓을 매달아 그림을 그리는 등, 엽기적인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 대책 없는 ‘꼴통’ 스님으로 승적을 박탈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천연한 익살과 세상을 비튼 풍자, 그리고 허튼 소리들은, 그것들의 끝머리에 묻어난 허허로움과 사람에 대한 아릿한 순정으로, 세상 사람들을 ‘아,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게 만들고는 했습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열망으로 구축한 그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예술세계는 먼저, 외국에서 화답해 옴으로써, ‘동양의 피카소’로 자리매김합니다.

‘나는 걸레’란 자작시로 세상을 닦는 ‘걸레스님’으로도 불리며 무애의 자유를 한껏 체현한 그는, 자신을 제사 지내는 전대미문의 퍼포먼스로 세상을 질리게 하고는, 썰렁하게도 ‘괜히 왔다, 간다’면서, 한 세월 질펀하게 휘저은 삶을 두고 ‘괜히’ 가버립니다.

인류사에 그 이름자를 새길만한 사람들은 생의 끝자락에서, 험한 세월을 건너는 뒷사람들에게 실한 다리가 될 만한 귀한 말씀을, 한 꼭지씩 남기고는 합니다. 여보게! 나는 저승 갈 때 무얼 두고 가지?

소쿠리로 물을 퍼 담듯, 괜한 용만 쓰며 살아온 나에게, 남겨놓을 청사에 길이 빛날 한 말씀이야 무에 있을 리가 만무하겠으나, 이래 봐도 이 몸은 그 옛날 정승판서의 DNA를 유장하게 이어온 자손인즉, 나중 되는 큰 은사 누릴지 그 앞날을 누가 가늠하겠는가.

시절인연을 잘 만나 이름을 세우고 세상 인연의 끈을 놓을 때를 기다리며 심중에 고이 새겨둔 것을, 이마저도 남이 먼저 채갈까 염려되니, 이참에 후딱, 찍어놓고 볼일이다. 요컨대, 내가 이 땅에 어디 오고 싶어 왔는가, 가고 싶어 가는가. 참으로 나는, ‘할 수 없이 왔다. 할 수 없이 간다’.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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