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의 이야기

2008-0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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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어둔 이야기

북가주 밀알의 밤이 금,토,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평상시 말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한(?) 승욱이 엄마가 사람들 앞에 서면 무진장 떠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승욱이 영상을 보여주고 그다음 내가 단상에 올라가서 진행을 하는 순서로 준비를 했다. 승욱이의 영상이 시작되면 나도 마치 처음 그 영상을 보는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저 아이가 그때 그 아이 맞나?’
10년 전, 첫아이 돌잔치를 치르고 바로 둘째아이(승욱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임신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있을 무렵 친구 ‘H’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민아야, 나 임신했어. 8주래. 첫아이라 아무 것도 모르니까 니가 많이 가르쳐줘.” 축하한다는 말을 열심히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나와 친구 ‘H’의 출산예정일이 똑같았다. 친구와 난 점점 배가 불러오고 임산부들이 받아야 할 검사들을 받을 무렵 친구 ‘H’에게 울먹거리는 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민아야, 어떻게 해. 우리 아기 머리에 혹이 있데.” “뭐? 혹이?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검사도 더 해봐야 하겠지만 의사 선생님이 별로 좋은 것은 아니래. 나 어떻게 해.” “아직 뱃속에 있는 애기를 어떻게 알아. 너무 걱정 마, 나쁜 일 없을 거야” 친구는 매일 울며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당시 할 수 있는 태아 검사를 모두 다 해보았지만 결과는 출산할 때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의사의 소견은 장애아로 태어날 확률이 반반이라고 했다.
친구는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왔고 나와 같은 산부인과를 다녔다. 같은 날 예약을 해서 걸어서 둘이 산부인과를 다니며 “걱정 마, 건강한 애기 낳을 거야. 그리고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장애는 무슨 장애. 아닐 거야.” 난 그렇게 매번 친구를 위로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난 친구의 이야기를 걱정스럽게 했다. “걱정이야. 설마 ‘H’가 장애아를 낳으면 어쩌지?” 남편은 “난 못 키울 것 같아. 내가 ‘H’라면 너무 힘들 것 같아.”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을 남편도 똑같이 말했다. 이 세상 누구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고 싶진 않을 거다. 그런데 그때 난 “혹시. 만약에 나에게 하나님이 장애아이를 주신다면 난 그냥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김 민아, 말이라도 그런 말하지 마.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아니.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는 거지.”
진통이 예정일보다 일찍 시작되었고 너무나 짧은 산통을 겪고 승욱이를 낳았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던 승욱이가 퇴원하는 날 소아과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난 뭔가 심각한일이 나에게 다가올 것을 알았다. 출산을 기다리던 ‘H’는 나보다 일주일 늦게 건강한 딸을 출산했다. 친구가 딸을 출산한 날, 승욱이가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안과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산후조리라는 것도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쫓아다니며 아이의 눈을 고쳐보려 뛰어다닐 때 친구 ‘H’에게 전화가 왔다. “애는 잘 크지?” “응.” “넌 아들 낳아서 좋겠다.” “응” “나 산후조리 거의 끝나가니까 한번 만나자” “아니. 나중에 보자.”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왜 그래?” 난 그냥 수화기를 들고 흐느껴 울었다. 아이러니하게 친구는 건강한 딸을 난 승욱이를 낳고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랜시간을 눈물로 보냈는지.
그런 그 아이와 엄마가 10년 후 사람들 앞에 서다니. 사람들은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내가 왜 우는지 아무도 모른다. 왜 그리 눈물 가득 고여 있는지 아무도 몰랐을 거다. 가슴에 묻어둔 ‘만약에 나에게 하나님이 장애 아이를 주신다면 난 그냥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10년 전 나의 입술의 고백이 오늘 이렇게 실천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가 언제나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나의 마음을 때린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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