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향수의 메카 산속마을 그라쓰

2008-0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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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메카 산속마을 그라쓰

바위산 위에 세워진 고르동 마을. 레스트랑과 가게들이 절벽위에 자리잡고 있어 절경이다.

향수의 메카 산속마을 그라쓰

남부 프랑스의 관광명소인 예술인 마을 생폴. 인구는 250명인데 관광객은 연간 220만명이다.

프랑스 향수의 80퍼센트 생산, 근처 생폴, 고르동 두 마을은 절경

보이지 않는 옷 제조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소설 중에 ‘향수’(Perfume)라는 것이 있다. 한국 서점가에서도 화제였었다. 내용은 냄새 분별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불우소년 그루누이가 프랑스의 산속 마을에서 세계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25명의 여자를 죽인다는 스토리다. 공포에 떨던 마을 사람들은 조향사인 그루누이를 단두대에 올리지만 여성의 체취로 만들어낸 그의 향수가 이상한 마력을 발휘해 그를 죽이지 못한다.
천재 조향사 그루누이가 향수제조 기술을 배우는 산속의 마을이 바로 그라쓰(Grasse)다. 기자도 쥐스킨트의 소설을 읽고 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향수의 메카’로 불리는 이 타운은 니스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프랑스 향수의 80%가 이곳에서 만들어지며 각종 식품의 향기도 이 마을에서 개발된다. 마을 주민 2,700명이 종사하는 향수산업의 수입이 6억유로 규모며 관광객이 연간 220만명이나 몰려온다고 하니 그라쓰가 산속 마을이지만 경제력이 산업도시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인에게 있어 향수는 제2의 체취며 보이지 않는 옷이다. 그래서 향수를 액체보석이라고도 부른다. 조세핀이 나폴레옹을 향수로 매혹시킨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흥미 있는 것은 ‘조향사’(調香師)라는 직업이다. 조향사는 최소한 천연향 200~300종, 합성향 500종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화학지식도 해박해야 하지만 예술적인 감각도 뛰어나야 된다. 이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야 인정받으며 미술가나 마찬가지로 향기를 창조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조향사의 봉급은 굉장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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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고나르’의 조향사가 프랑스 향수의 특징과 제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라쓰의 대표적인 향수회사인 프라고나르는 1726년에 설립 되었으며 수십종류의 향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급향수 1온스 만드는데 1만송이의 꽃이 들어간다고 한다.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샤넬 No.5’(사진)를 만들어 코코 샤넬의 꿈을 이루어준 에피소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샤넬은 자신의 이름을 딴 냄새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에르네스트 보는 그녀를 위해 5개의 향수를 만들었는데 샤넬이 5번째의 향수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 향수의 이름이 ‘샤넬 No.5’가 된 것이다. 만들어진지 84년이 지났는데도 ‘샤넬 No.5’는 여전히 향수계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마릴린 먼로가 “나는 샤넬 No.5와 함께 잔다”고 말해 더욱 유명해졌다. 섹스 심벌 마도나는 유혹적인 향기의 장폴 골띠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요염한 화이트 다이아몬드, 오드리 헵번은 청신한 렝테르디, 비비안 리는 정열적인 향기의 조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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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는 ‘eau de toillete’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화장실용 향수인 줄 알고 연말에 선물 받고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기자도 ‘오 드 뜨와렛’은 화장실용이 아니라 엑기스 향료가 1~6% 섞인 가벼운 향수라는 것을 그라쓰의 조향사로부터 설명 듣고 나서야 알았다. 향료가 진하게 들어간 향수(엑기스 15~40%)만 perfume이라고 부른다. 고급 향수는 80~100개의 향을 섞어 만들며 1온스에 1만송이 이상의 꽃이 들어간다고 하니 비쌀 만도 하다.
그라쓰 근처 산꼭대기에는 ‘생 폴 드 벵스’와 ‘고르동’이라는 예술인 마을이 있는데 절경이다. 나에게는 프랑스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다. 17세기 건물 내에 차려 놓은 상점들은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화가 샤갈도 ‘생 폴 드 벵스’에 묻혀 있다.

<이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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