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행복 바이러스

2008-0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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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역시나 촬영불가라는 통보다. 그래서 난 다시 한번 부탁했다. “사진만 찍겠습니다.” 수업할 때 2시간만 사진을 찍는다는 엄마의 친필각서(?)를 쓰고 사진을 찍게 되었다. 기숙사 또한 홍보부가 따로 있어서 홍보부 디렉터와 시간을 맞추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사립기숙사여서 촬영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기에 승욱이만 따로 시간을 내서 찍기로 허락을 받았다.
기숙사는 직접 홍보부 직원들이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찍을 수 있는 곳과 찍을 수 없는 곳을 정해주었다. 뭐가 그리 국가기밀이 있는 곳인지 철저한 보안작업이 동반되었다.
촬영을 하는 날이면 내가 미리 전화를 걸어놓고 영상을 맡은 ‘미진’씨와 ‘효종’씨가 기다렸다가 학교와 기숙사로 들어가는 일을 했는데 이것이 예정대로 딱딱 스케줄이 맞으면 문제가 없는데 원샷으로 촬영을 한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데 계속 강행을 해야 하나 난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때, 촬영을 가서 거절을 당하고, 학교에 사진을 찍으러 가면 승욱이가 학교에 오지 않은 날이 있어도 그 어떤 짜증이 나는 날도 ‘효종’이란 친구는 전혀 짜증을 내지 않고 언제나 싱글벙글이다. ‘효종’이란 친구는 대학에서 필름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미진’씨에게 촬영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이번 영상 만드는 작업에 함께 하는 거다. 한 번 두 번 승욱이를 만날수록 승욱이와 친해지게 되었고 두 달을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으면서 장애우에 대한 ‘효종’씨의 생각과 자신이 앞으로 어떤 필름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연출이 전혀 필요없는 아이 승욱이의 자연스러운 표정, 웃음, 짜증난 얼굴, 우는 얼굴, 율동하는 모습, 소리 지르는 모습... 그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클로즈업해서 찍으며 ‘효종’씨는 혼자 감동받고, 기뻐하고, 안타까워하고, 승욱이가 웃을 때 함께 웃으며 두 달간의 작업을 마쳐주었다. 단지 일을 배우러 온 그 친구였는데 두 달동안 사랑에 푹 빠진 거다. 승욱이를 만나러 오는 날은 밥도 안 먹고 새벽같이 달려와서 엄마인 나보다 먼저 승욱이를 만나고 있던 ‘효종’씨가 승욱이를 만나면 만날수록 행복했다고 만날 때마다 기대되고 설레였다고 했다. 그런 마음으로 영상을 찍었으니 얼마나 잘 찍었을까? 사랑 가득 담긴 필름이겠지? 이번 영상은 진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과는 정말 좋을 것 같다는 부푼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아... 이게 웬일인가!! 편집과정에서 글을 쓰기 위해 필름을 보는데 온통 녹음된 소리는 ‘효종’씨의 소리다. 비디오를 들고 조용히 촬영만 해야 하는 전문가(?)가 그만 승욱이의 행동에 놀라고, 웃긴 모습에 웃고, 귀여운 모습에 함께 소리를 지르고, 스테프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하고.... 오 마이갓~~ 가족 시트콤을 찍으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데 이걸 어떻게 쓸까... ‘미진’씨와 나의 따가운 눈총에 ‘효종’씨는 행복한 표정으로 겸연쩍게 웃으며 “어? 내가 언제 그랬지?”
승욱이가 ‘효종’씨에게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일상을 보여주고 승욱이가 가는 곳을 함께 다녔을 뿐이다. 승욱이는 자신이 촬영이 되는지조차 모르는 아이다. 그런데 ‘효종’씨는 그런 승욱이에게서 어떤 모습을 본 걸까? 승욱이뿐만 아니다. 많은 장애우들을 가까이서 보면 장애우 친구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건 없는데 만나고 오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건 장애우를 가까이서 만나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비밀을 알려면 일단 한 번 장애우 친구들을 만나보길... 그러면 장애우 친구들로부터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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