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 삶-수려하고 귀중한 보석, ‘여보’

2008-01-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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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중 근본적 주춧돌은 부부관계일 것이다. 이상적 부부관계는 자녀들과의 유대와 부모님과 일가친척 등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기본요소이다. 그런데 이 부부관계란 것이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 단위로 구성인원은 불과 두 사람뿐인데도 잘 관리하고 유지하며 이끌고 나가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부부 두 사람의 관계가 두 사람만의 관계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고 부부관계의 역할에는 수많은 내적 외적 변수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의 고전이 되다시피 한 커플들의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의 관계는 정치적 동반자이며 동지였다고 한다. 프랭클린이 소아마비에 걸려 정치생활을 포기코자 했을 때도 그를 정치복귀에 대한 집념을 잊지 않도록 정치 인맥들과 교신하고 정치 연설을 하며 7년의 투병생활을 함께 했다. 그 후 프랭클린은 인격 성장의 결과와 함께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프랭클린은 자산의 3분의2를 내어 소아마비 장애자를 위해 특수병원을 설립했고 나중 주지사로 구제정책과 노인연금을 수립할 수 있었다.
한편 영부인 시절의 엘리노어는(1933~1945) 노동자와 흑인의 권리신장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뉴딜정책의 인권과 인종부문 정책은 엘리노어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한다. 남편 서거 후에도 그녀는 미국의 유엔 대표단으로 유엔 인권선언(1948)을 기안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 불행했었고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의 냉대와 지나친 간섭 그리고 서거 때까지도 지속되었던 프랭클린 대통령의 혼외 애정관계로 그를 존경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은 없었다고 밝힐 정도로 고통 속에 살았었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시몬 드 보바르(1908~1986)의 관계는 계약결혼의 관계로 평이한 부부관계가 아니었음을 잘 안다.
두 사람은 20세기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들이었다. 51년간의 연인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서로 숱한 애인을 두고 또한 그러한 상호관계를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문학작품으로 실현화시켰다. 따라서 그들의 관계는 그들의 철학적 가치관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소신과 신념의 산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하며, 상대방에게 철저히 투명하여 거짓이 없고,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속시키지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서로 허용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평생을 걸쳐 사랑과 사상의 동반자로서 보바르는 사르트르를 ‘나보다 완전하고 나와 닮은 사람’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여지가 없는 확실한 성공은 사르트르와의 관계’라고 평하였다.
요즘은 이념과 야망을 함께 하는,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부부를 많이 본다. 정확히 말한다면 부부가 아니고 그냥 동지에 불과하다. 우리말에 부부를 지칭하는 ‘여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의 해석에는 의견이 여러 가지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항간에는 ‘여보’라는 말이 ‘여기를 보세요’라는 말로 ‘나를 좀 보라’는 뜻의 호칭으로 불린다고도 하고, 같을 ‘여’자와 보배 ‘보’자로 보배와 같이 귀중한 사람이라는 의미라고도 하고, 수려할 ‘여’자와 보배 ‘보’자로 수려한 보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어찌되었던, 상상해 보건대, 독자들이 배우자를 부를 때마다 여보라는 말을 쓰면서, 매번 ‘여기를 좀 보세요’라고 생각하고 부른다면 너무 이기적이고 좀 메마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것보다는 이왕이면 ‘나의 수려한 보석같이 귀중한 사람’을 속으로 되뇌며 부른다면 부부관계가 더욱 긍정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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