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성시대의 패션-켈리 이야기

2007-12-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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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저희 학교에 학부형 한 분이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딸이 패션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는 동떨어진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저희 학교의 안내문을 보고 학교도 돌아보고 딸의 장래를 위해 상담을 하고 싶어 방문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날 상담을 마치고 며칠 후 학부형은 딸과 함께 다시 저희 학교를 찾았고 그 학생은 아주 단정한 모습으로 성격도 묻는 말에만 대답할 정도의 수줍음을 많이 타는 흑인 아가씨였습니다.
이름이 켈리인 그 학생은 자신이 그린 400여개의 디자인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많은 디자인은 다소 테크닉이 부족했지만 하나 같이 창의력이 돋보였고 정성과 열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켈리의 어머니는 켈리에게 관심을 갖고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학교를 찾았고 저희 학교의 소수정예 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마음에 들어 입학을 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켈리와 대화하며 여타 학생과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어 보였지만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입학절차를 마치고 돌아간 후 저는 켈리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그녀는 장애인 학교를 졸업하였고, 집중력이 부족해 의사의 처방약이 필요할 정도의 심각한 증세라는 것은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켈리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혹시라도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우로 그녀의 입학을 허락한 것을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켈리가 강의를 듣기 시작하며 그녀의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기 위해 패션 테크닉 과목과 함께 그것에 관계된 정신과목을 정규과목에 편성해 주었습니다. 사이컬리지 과목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자신감을 갖게하며 사회 진출 때 접하는 문제에 대한 대처와 비전에 대한 창출방법 등 정신적 부분이 포함돼 가능성과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켈리와 같은 학생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빠르게 학업에 적응했고 학교 문이 열리기도 전인 이른 아침에 등교하여 기다리기가 일쑤였습니다. 집중력이 남보다 약한 그녀는 열심히 노트를 했고 기억을 하기 위해 같은 것도 몇 번씩 다시 물어보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가진 핸디캡 때문에 섬세한 부분에 대한 마무리는 조금 부족했지만 그녀의 정열은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았습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시기에 켈리는 빈속에 과다하게 약을 복용해 학교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로 인해 등교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등교를 한 켈리는 창백한 모습에 예전 같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켈리를 사무실에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조치해 주고 같은 과 학생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을 가진 이유는 모두가 합심하여 그녀가 편안히 수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자는 것이었고 간혹 그녀를 무시하거나 비웃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였습니다. 저는 그런 학생들을 질책하려 한 것이 아니고 켈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 위함이었고 학생들은 그런 제 생각에 대해 모두가 공감을 했고 자신들의 의견을 얘기했습니다.
그 후 학생들은 켈리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점심을 사다주기도 하고 불편함이 없이 도와주려는 아름다운 행동과 켈리가 폐쇄된 마음을 열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며 저는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제 2007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 해가 가기 전 우리의 조그만 사랑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것을 채워주며 마무리 합시다.
오해가 있었다면 그것을 풀고, 다툼이 있었다면 화해를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모두의 연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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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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