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내게 소중한 것들

2007-12-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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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삶이 아무리 부지런하다 해도 자연의 때를 앞지르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삶은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이 앞선다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 때가 주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아는 농부들은 대부분 겸손할 뿐만 아니라 때를 알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거름 주고 밭을 갈고 씨앗을 넣어야 한다는 것과 여름이 되면 심은 것들이 잘 자라도록 가꿀 줄 알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때를 놓치면 농사는 망칠 수도 있습니다. 자연의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생의 때를 아는 사람을 옛 사람들은 철들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철들기 위해서는 자연의 섭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사계절을 다 거쳐 보아야 사계절을 알듯이 사람도 자연의 계절과도 같은 희비애락을 다 겪고 알아야 철들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계절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여름에는 겨울바람 쐬며 살고 겨울에는 여름바람 만들어 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도 온도의 변화가 큰 것을 싫어하게 되고 밋밋한 채로 철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비로소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다른 이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소중하고도 고마운 것들을 너무나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 하찮은 것들을 더 소중하고도 고마운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농사일 하는 틈을 이용해서 여러 곳을 다닐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중문화 가정 공동체를 만들고 애쓰시는 김민지 목사님 초청으로 세인트루이스에 다녀왔었는데, 그때 국제결혼하신 분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의 시작은 농업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국제결혼하신 분들로부터 이민이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 중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한인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분들이 모여 20여년 전부터 치유와 회복을 위한 새로운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애리조나 플랙스탭에 있는 인디언 선교센터를 방문했었습니다. 나바호 인디언 선교를 하는 한명수 목사로부터 농업에 대한 자문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레마을 식구들과 함께 그 곳에 가서 실험농사에 대한 구상을 함께 하였습니다. 나바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예배도 드리면서 이들이 미국의 역사 초기부터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소중’이라는 말은 ‘솟음’이라는 말이 변한 것이고, ‘솟음’이라는 말은 ‘솟아 움터남’의 줄임말입니다.
위에 계신 분, 빛이신 분으로부터 온 모든 것들은 소중한 것들이고, 어둠으로부터 온 것들은 하찮은 것입니다. 어둠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것이 빛을 알게 하고, 빛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소외당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소중한 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다면, 아니 소중한 내 자신이 하찮게 취급당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소중한 것들이 소중하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통해 우리 자신은 더욱 소중한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분주하고 바쁜 연말을 지내면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보람 있고 잘 사는 것인지, 우리 인생에 정말 소중한 것들을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찮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새해를 준비했으면 합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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