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 이야기-마지막 부탁

2007-12-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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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어서 일어나. 학교 늦겠다. 진영아, 승혁아, 태훈아” 아침부터 출근준비에 아이들 학교준비에 정신이 없다. 20분만 일찍 일어나면 아침도 먹고 시간도 더 여유있을 텐데 단잠 20분 더 자고 싶은 생각에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난 바빠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아이들은 여유만만이다. 뭐라도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식탁에 앉혀놓으면 “밥주세요, 빵주세요, 시리얼하고 우유~” 각자 취향에 맞춰 주문을 하니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주는대로 먹어!” 난 밥도 못 먹고 이리 서두르는데 아이들은 끝까지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으니 난 차에 타서 연신 애들을 부른다. 아, 아침부터 목소리가 쉴 판이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학교로 가면서도 훈계 아닌 훈계를 하고 내일부터는 좀더 일찍 자고 좀 더 일찍 일어날 것을 주문하고 다짐을 받은 것이 몇번째인지 모른다. 학교 앞에 하나씩 내려주는데 여자조카가 빈손으로 서 있다. “이모, 나 책가방 안 가져 왔어” “어? 교실로 갖다 줄 테니까 얼른 학교 들어가, 종치겠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혼잣말로 ‘저것들 언제 크지? 아직도 자기 책가방을 못챙기다니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 거야’
승욱이가 기숙사로 간 후 아침에 큰아이 학교에 보내는 일은 아주 여유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애 셋을 학교를 보내려고 하니 여간 정신없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각자 다르게 가져오는 숙제들과 스케줄 그리고, 사인해서 보내야하는 종이도 여러 장이고, 4학년 5학년인데도 아직 챙겨줄 것이 만만찮다. 회사 일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고 애들 가져오는 숙제가 나에게 스트레스다. 애들이 잠들고 난 뒤에도 뒤치닥꺼리하며 “에구, 이게 웬일이야”
주말이면 승욱이까지 넷이서 북적거리니 점점 목소리가 커져간다. 집 전체가 매일 폭격을 맞은 듯 여기저기 정리가 되질 않고 있다. 친정엄마도 나도 언니도 애들도 아직 서로가 적응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작은 집에 복닥복닥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난리를 피우고 살고 있다. 늦은 저녁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한 것이 더 이상해진 분위기에 난 자는 아이들 얼굴을 본다.
“아이들, 아이들…” 당신의 아이들을 마지막에 부르고 간 형부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진다. 응급실 간이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언니와 나를 너무 애처롭게 바라보며 목소리도 나오지 못해 손을 휘휘 저으며 소리 없는 외침이 형부의 마지막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난 그저 아이들을 다음날 학교에 보내달라는 부탁의 말을 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마지막인 것을 알았다면 난 뭐라 말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형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신에게 아주 엄청난 일이 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아무도 몰랐다니.
‘형부, 뭐라고 말씀하고 싶었는지 알아요. 조카들을 부탁한다고 말씀하고 싶었죠? 그 자리에 마지막 형부가 떠나는 곳에 제가 있었다는 건 우연이 아니었어요. 걱정마세요. 형부의 마지막 부탁 제가 꼭 지킬께요. 우리 아이들이 대학가고 시집 장가가고 그리고 자녀를 낳는 것까지 다 보고 돌봐 줄께요. 물론 지금은 다 힘들어요. 서로가 적응하는 시간을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곧 좋아질거예요. 열심히 아이들 키우고 살다보면 좋은 날 오겠죠? 지금도 매일 좋은 날이긴 하지만요. 아이들과 재밌게 살께요. 미안해요 우리만 이렇게 살아서요... 그곳에서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를 향해 웃어주세요. 참 보고습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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