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스크로-크리스마스 카드

2007-12-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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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열어보는 것이다.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업무에 관련된 메일과 개인 메일을 열어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늘 새롭고 행복한 순간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는 많은 소식들이 찐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고 또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 되면 좀 더 여유롭고 나긋나긋(?)한 메시지들이기 때문에 즐겁다.
관련업체이거나 법적 문서일지라도 주초와 주말이 다르게 들어오고 마음을 담는 그릇이 모시로 감싼 은쟁반이 되었다가 멋없는 주발이 되기도 한다.
“Dear….”로 시작하는 말투에서 “Hi….”로 편안하게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평소 맺힌 것이 있는 껄끄러운 사이라면 아무래도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 접속하는 것이 사실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성탄을 눈앞에 둔 요즘은 그저 하루하루가 주말 같아서 스위트하고 너그러운 덕담을 담은 이-메일과 전자카드가 밀려들어온다.
장성한 자녀를 둔 세련된(?) 관련업체 사장님의 한층 업그레이드된 성탄절 전자카드는 자극이 되기에 충분하고 1.5세대나 2세에 가까운 변호사나 CPA들의 카드는 심지어 열어보기에도 복잡하여 문화적 충격에 ‘나이 들어 감’을 절감하게 된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서 마음에 드는 카드를 고르느라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필자와 컴퓨터 앞에 앉아 ‘한 키’에 배달까지 시키는 X세대와의 수평수직 교감에 소위 게임이 되지를 않는다.
각종 세미나와 새로운 개정법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수집하고 양식을 업데이트하며 직원들에게 재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역시 요즘의 정보는 인터넷으로 재빠르게 전달되고 있어 홍수처럼 들어오는 정보를 파악하고 보관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예전에 에스크로의 셀러나 바이어를 위한 사본을 한 부씩 봉투에 넣어 건네는 일이 이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보관에도 편리하고 자신의 변호사나 회계사에게 쉽게 넘길 수 있도록 이-메일로 받기를 원하는 분들이 절반에 가까워졌다.
머리로 열심히 신세대를 앙망하는 것과는 달리 아직 가슴은 빨간 우체국 소인이 찍힌 알록달록한 카드에 정이 가니 아이들 말로 ‘촌티를 벗기’가 힘들다.
정이 듬뿍 담긴 필체로 볼펜 ‘똥’이 묻어나는 글에서 왠지 인간미가 느껴지고 침 묻혀 바른 봉투를 뜯을 때에는 나를 기억하고 챙겼을 상대의 정겨운 마음에 가슴이 찡하다.
무엇을 하여 먹고 살든 이곳 이민생활은 정신없이 바쁘다. 집 밖을 나가면 모두가 스트레스이고 아이들까지 운송수단 없이는 어떤 생활도 불가능하니 5분의 시간도 헛되게 낭비하는 법 없이 사느라고 자신을 위해서도 내기 힘든 시간을 남을 위해 쪼개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맘때가 되면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카드로 한 친구의 정성스럽게 만든 소박한 편지가 생각난다.
조그만 베란다에 허브와 여러 가지 꽃을 키우기를 좋아하는 이 친구는 꽃잎과 허브 잎을 곱게 말려서 한지에 정성스럽게 발라 장식을 하고 투박스럽게 몇 마디 적는 것으로 카드를 대신하곤 한다.
“밥 잘 챙겨 먹고 운동 열심히 좀 하고 살지…. 일 좀 쉬엄쉬엄하고 대충 살아라” 누가 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이 쓴 것 같은 걱정 투성이 편지 겸 카드이지만 소중하게 서랍에 넣어 두고 꺼내보며 한 해를 버티는 영양제가 된다.
고마운 분들과 소중한 벗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쑥스럽지 않는 시간이 성탄이기도 하다. 최근 사진을 넣어 이-메일 카드로 신세대 흉내를 내보는 것도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213)365-8081
제이권<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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