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1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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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려

지난 주 비영리 민간단체의 특별 세미나에 초청받아 한국에 가는 길에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겪은 일입니다.
저는 초청자측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려고 직항을 피하고 일본을 경유하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 원스톱 경로를 택하였는데 나리타 공항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연결편이 고장 나는 바람에 도쿄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공항 내의 연결편 안내판에 항공기 출발 게이트와 출발 시간이 표시되지 않는 것이 수상쩍어서 항공사 서비스 창구를 찾았더니 이미 수십 명의 승객들이 모여 있었고, 항공사측은 여객기 고장으로 인해 하룻밤을 공항 밖 호텔에서 지내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순서를 기다려 호텔을 지정받고는 다른 승객들과 함께 항공사 직원의 안내로 호텔로 가려는 순간 창구 근처에서 서성이는 약 50세 전후의 여자분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얼굴에 난감, 초조한 기색을 가득 담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국인인 것 같아 물어 보았더니 그 분은 LA에 사는 한국인인데 영어를 못해 옆에 있던 다른 한국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항공사에서 호텔을 마련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는 얘기만 전해주고는 먼저 가버렸다고 합니다.
미국에 온 지 10여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길이라 국제여행 경험도 전무 한데다, 항공사측이 호텔을 마련하지 않는 이유도, 또한 호텔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라 대책 없이 마냥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딱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일본인 직원에게 잠시 후에 따라 갈테니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 달라는 얘기를 하고는 다시 그 분과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 순서가 되어 자세히 물어봤더니 그 분은 ‘좌석대기 티켓’을 샀기 때문에 호텔을 지정해 줄 의무가 없다며 냉정하게 잘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공항에서 기다리든지, 나가서 개인적으로 호텔을 찾든지, 자신들은 알 바가 아니라고 합니다. 너무 뻔뻔한 모습에 부아가 나서 매니저를 찾아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호텔값이 너무 비싸서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며 “그래도 이제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정보도 들어서 마음이 훨씬 편하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그 분의 말씀을 들은 후, 셔틀 버스가 기다리는 지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이미 한 시간 이상이 흐른 후라 버스는 떠나 버리고 나 자신이 미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안내 창구를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호텔과 공항버스 쿠폰을 받아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6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도, 호텔에서 잠을 청할 때도 그 분의 안타까운 모습이 가슴에 남아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 출발 게이트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는데 비록 초췌한 모습이지만 반갑게 웃음 짓는 그 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털어버린 듯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 분처럼 곤경에 처해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단지 하룻밤의 고통이었지만, 많은 이웃들의 절망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하찮은 배려가 그 분에게 큰 위안이 되었듯이, 우리가 조금만 그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그들은 얼마나 고마워할가 하는 생각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친척들과 환하게 담소하는 그 분의 미소를 보며, 뿌듯한 그 무언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샘솟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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