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1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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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녀간의 죽음을 초월한 절대적인 사랑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던 16세기말 무렵, 한국 땅 경상도 안동에서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조선시대 젊은 부인의 애절한 편지가 쓰여졌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매거진은 이번 11월호 이슈에서 420년 전 쓰여 진 사랑의 편지가 남편의 주검과 함께 무덤에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가 발굴된 일을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라고 보도하고 있다.
400여년이라는 긴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넘은 이 편지가 다른 유품들과 함께 발견된 것은 사실 시간이 좀 지난 일이지만, 최근 미국 의학자들이 잘 보존된 미라의 DNA를 검사해서 사망 원인을 추적하는 연구가 현대 의학에 큰 공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편지의 내용을 알게 된 미국 사람들은 DNA추출 가능성보다 애절한 사랑의 편지를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에 비유하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1586년) 유월 초 하루날”이라는 서두로 시작된 사랑의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중략)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시는 거지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중략)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없이 많아 이만 적습니다.”
사랑은 진정 죽음보다 강하다.
비록 31세의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이 부부 사이를 갈라놓기는 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무려 400년이 넘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마음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으니, 죽음으로 인한 단절은 순간적이지만 절대적인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입증된 것이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가치, 영원한 것을 접할 때마다 전율과 함께 감동을 받게 된다.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은 절대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상대적인 가치만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늘 절대적인 가치, 절대적인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본능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저들의 마음 중심에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본성을 심어두셨기 때문이다.(전도서 3:11)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름답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피부로 느껴질 수 있는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지속되는, 그래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다.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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