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 꿈이 되어버린 일상

2007-10-27 (토)
크게 작게
예전에 한국에 살았을 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외국에서 사는 것이 매우 낭만적인 경험이나 멋진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며 나는 꿈을 꾸었었다.
간판이 많은 빌딩 사이를 걸어 다니고 버스를 서서 기다리고 때로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뛰며 외국 친구들과 여는 멋진 파티를 상상하고 푸른 잔디밭에서 돗자리가 아닌 담요를 꼭 깔고 피크닉을 하고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되는 여러 가지 상상을 했었다. 그랬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나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낭만적인 외국이라는 곳에 나와 살아보니 우아하게 살 것만 같던 나는 이방인으로 남보다 더 치러야 할 일들이 많아 뛰고 또 뛰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제부가 보내 준 멋진 한국의 명소 사진이 아닌 간판이 너무 덕지덕지 붙어 보기 싫던 한국의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 사진만 보아도 눈물이 핑 돌고. 푸른 잔디밭에 담요 한 장 들고 나갔다가 땅에서 찬기가 올라오는 바람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짐 속에 은박지가 뒤에 깔린 멋없다 생각했던 돗자리를 다시 찾게 되었다. 어쩌면 꿈을 꾸던 나는 꿈에 들어와 살며 그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지난번에는 한국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세일하는 품목 중에 사브레라는 비스킷을 장바구니에 세 개나 넣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이 과자 생각 나?” 그랬더니 남편도 많이 먹고 자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자를 나는 제일 싫어했다고 이야기 하니 남편이 그런데 왜 세 개나 샀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 과자는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친할아버지께서 내게 자주 사 주셨던 과자야. 그 당시 이 과자가 비싼 과자였는데 아마 할아버지는 내게 비싼 과자를 사 주시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표현으로 생각하신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이 과자가 싫었고 늘 제일 싼 과자들이 더 맛있었어.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이 과자를 사 주실 때마다 나는 이 과자를 들고 와 그냥 책상 위나 식탁 위에 두고 먹지 않았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 보니 이 과자가 내게 맛 대신에 그리움으로 남은 것 같아. 그래서 할아버지 생각하며 먹으려고 산거야. 이 과자는 내게 그리움이야. 나는 그리움을 먹는 거고” 하며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집에 돌아온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게 건네주신 과자처럼 과자 하나하나를 보고 또 보며 과자를 먹었었다. 그런데 지금도 참 맛이 없다.
이제는 내가 꿈을 꾸던 그 시절의 나의 일상들이 내게 꿈이 되었다. 동생이 전화를 했다. 그러며 할 이야기를 하고 바삐 끊으며 이야기한다. “언니 지금 엄마랑 마트에서 장보고 있거든 그래서 빨리 끊을 게”라고. 동생이 말하지 않아도 전화기 뒤편으로 들리는 마트의 생선코너 홍보 소리가 들린다. “오늘 들어온 고등어 가격이 반 가격입니다.”
동생은 전화를 바삐 끊었지만 나는 그 생선 파는 아저씨 목소리에 목이 멘다. 나는 마치 그 곳에서 우두커니 서서 늘어선 고등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지만 나는 가끔 내 그리움에서 나의 일상이었던 곳을 걸어 다닌다. 꿈이 되어버린 나의 일상 속에서.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