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바람, 그리고 화마…

2007-10-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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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일대가 온통 불바다다. 솟아오르는 불길은 바람을 타고 엄청난 위력으로 번져가고 20여곳의 광활한 산야는 화마에 휩싸여 귀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있다.
유타에서 생성됐다는 뜨거운 바람, 샌타애나 윈드가 높은 기온으로 바싹 마른 남가주 일대를 화풀이나 하듯 80~90마일의 속도로 질주하며 할퀴면서 초강풍의 위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바람이 멎어주던지 차라리 한 방향으로만 불어주더라도 훨씬 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뉴스를 들으며 정말로 바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압의 변화가 일으키는 공기의 움직임이 바람이다. 지구의 온난화와 공해는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예상하기 힘든 기압의 변화는 또한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갖고 온다고 생각할 때 참으로 무거워지는 가슴으로 생각 없이 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방화까지 원인이 되고 있다니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 가고 있나 슬프기 그지없다.
바람.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작은 나라, 작은 마을에서 소박한 삶을 사는 순진한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노래는 지금 이리 저리 불길을 넓히며 무섭게 타오르게 하는 거센 바람 앞에서 마치 거인에게 입으라고 내놓은 간난 아기 옷처럼 너무나도 철없어 보이는 순박하기만 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불어오는 이 바람은 나쁜 바람, 무서운 바람이라고 노랫말도 만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경기도 바람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부동산 시장은 활황세의 뜨거운 바람으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 저기 찬바람이 분다. 그것도 거세게 불고 있다. 불똥이 이리 저리 튀면서 불을 내고 재산을 앗아가고 있다.
재융자도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변동이자율로 집을 샀던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에 집을 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포클러저 프라퍼티가 늘어나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는 이런저런 처방을 내놓지만 한번 식은 바람은 다시 열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풍전등화,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말이 있다. 사물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면서 언제 꺼질지 모르는 사태를 얘기할 때, 또 사물의 덧없음을 얘기할 때 우리는 풍전등화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정말 우리의 매일 매일 삶은 어쩌면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통해 오히려 많이 용감해지고 침착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을 다 태우고 아직도 김이 나고 있는 잿더미 앞에서 인터뷰하는 부부를 보았다. 생명의 안전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모습과 재산들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얘기하는 모습에서 바람을 이기고 우뚝 서는 강인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두달 반짜리 아기를 데리고 나오면서 그녀가 챙긴 것은 기저귀 한 뭉치와 애기 사진첩, 결혼 앨범, 그리고 성경책이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돈 주고도 못 사는 추억과 당장 필요한 아기용품,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붙들고 매어달릴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게, 엄마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뭉클한 순간이었다.
불난리가 끝이 나면 다시 바람이 불리라. 산바람, 강바람, 시원한 바람이 불고 서로 돕는 화합의 바람도 불 것이고 그러면 신바람도 불지 않겠는가? 어려운 일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성령의 바람이리라.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전도서 1:6)는 말씀을 생각하며 여기 저기 부는 아름다운 바람을 생각해 본다. 하루 빨리 화마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323)541-5603
로라 김<원 프라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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