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 혼

2007-10-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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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지워라 비교하지 마라

우리 회사의 여러 회원을 만날 때나 재혼 후일담들을 들을 때 나는 내가 처음 참가했던 여고시절의 사생대회 생각이 자꾸만 난다. 그 때 나는 처음 그린 수채 자국을 말끔히 지우지 못해 결국 다시 그린 그림도 망치고 말았었다. 재혼에 이른 많은 이들이 내 경험과 똑같이 처음의 잘못 그린 자국을 지우지 못해 애를 먹거나 파경에 이르곤 하는 것 같다.
자신의 과거를 몽땅 지우고 재혼에 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것도 못했다면 그는 남을 생각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결코 상대의 과거를 모른 체 하거나 지워줄 수 없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재혼 상대는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흔적들을 대동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지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재혼이 초혼과 다른 것 중 하나가 상대에 대해 비교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전혼의 배우자, 전혼의 친정이나 시집 식구들, 자녀들 등등. 비교거리가 널렸다. 힘든 일이다. 말은 이렇게 절대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인간인 이상 비교거리를 두고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비교하지 않을 리 없다.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그것이 인지상정이라 하더라도 비교의 결과는 결코 긍정적이거나 산뜻할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다.
재혼에서 보이는 광경이나 조건들이 초혼에서 보고 겪은 것들보다 모두 나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니 거의 모든 경우가 처음보다 나을 리가 없다. 실망하기 위해 재혼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되도록이면 과거의 인연들은 부부간 서로 양해된 룰 속에 정리정돈하고 그 범주를 넘지 말아야 한다. 천륜을 지키기 위한 면접권을 행사하는 것 등에서 그쳐야 한다.
재혼 때 나타나는 갈등 중에서 지난 과거와의 단절이 미흡한 상태에서 다시 성급한 시작을 해버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과거는 지워야 한다. 비교하는 것도 과거의 망령을 지우지 못해 파생하는 것.
단념! 당신이 그랬듯 상대도 힘든 강을 헤엄쳐 왔다. 강 저 편의 일은 잊어라. 끊어라. 지울 때 지우지 않고 잊어야 할 때 잊지 않으면 성공 재혼은 그만큼 힘들어진다.
(213) 381-7799

김영란 <탤런트·행복출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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