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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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미국 하버드 대학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개미들은 죽은 동료 개미들을 발견하면 끌어내 공동묘지에 가져다 버린다는 사실을 관찰해 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죽은 개미를 그들은 눈으로 봐서 식별해 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개미 시체에서 나오는 올레익산(oleic acid)의 냄새로 알아낸다는 사실이다.
윌슨 교수는 살아있는 개미에게 올레익산을 묻혀주자 갑자기 주위의 개미들이 몰려와 단지 올레익산이 묻었을 뿐 살아 있는 상태인 개미를 끌어다 공동묘지에 묻어버리는 것을 확인해 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도 각자의 냄새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읽은 글 속의 ‘그의 몸에서는 막 샤워하고 나온 후의 비누향 같은 싱그러운 냄새가 느껴진다’ 하는 것 같은 표현이다.
어린 유아에게서는 밀크 냄새가 나고, 엄마에게는 엄마의 냄새가 있다. 나는 아직도 어렸을 적 어머님의 가슴팍에 코를 박으면 모시적삼 사이로 느껴지던 땀냄새 배인 따뜻하고 고소한 밥풀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배고플 때 밥솥 근처에 가면 무럭무럭 김이 풍겨 나오면서 느낄 수 있는 고소한 맛이 바로 밥풀냄새다.
냄새는 꼭 코로 맡을 수 있는 향기만이 아니다. 인간 전체 삶에서 풍기는 인품과 삶의 향기가 냄새일 수 있다. 시골농촌 사람들의 순박한 인간미와 정이 바로 그들의 풍기는 ‘사람냄새’다. 이처럼 농부에게는 농부의 냄새가 있고 상인에게서는 상인의 냄새가 있으며 학자에게는 학자의 냄새가 있다.
소박해야 할 농부에게서 고고한 학자의 의연한 냄새가 나는 것은, 교수에게서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상인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밥맛 떨어질 일이다.
마찬가지로 성직자가 세속에 아부하면 더 이상 고결한 성직자의 맛이 없어지듯 사람은 저마다 자기 직분과 역할에 알맞은 ‘사람냄새’를 풍기며 살 때만 이 세상은 살맛 나는 아름다운 곳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성서는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십시오. 잠시 있다 없어질 세상 가치에 뜻을 두지 말고, 천상의 것을 사모하십시오. 보다 높고, 순결하고, 고상한 천상 가치에 여러분의 뜻을 두고 사십시오”라고 말한다.
쓰다 버린 빈 향수병마저 오래토록 향수냄새를 풍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크리스천에게서야말로 진짜 사람다운 ‘진·선·미’의 사람 냄새가 풍겨나야 할 것 아니겠는가.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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