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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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원은 주민 지원이어야

저는 북한에 있는 다섯 곳의 고아 2,400명을 후원하는 미주 한인 재림교회 교우들의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밀가루와 우유를 공급하는 일을 하면서 지난 3년간 북한을 일년에 한 두 차례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좀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남북한 정상들의 합의성명도 뉴스를 통해서 요란하게 발표되었습니다. 그런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저는 어쩌면 북한체제를 상대로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저럴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애써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 동족들의 삶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참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 국가간의 합의라는 것이 화려한 수사적인 단어의 나열일 수도 있지만, 남북한의 경우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한의 이산가족들의 고통이나,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족들에게, 백두산 관광길을 합의했다느니, 기차로 북경 올림픽을 다녀 올 수 있게 되었다느니, 또는 대통령이 걸어서 남북 경계선을 넘었다는니 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글쎄요, 백두산 관광이니, 북경 올림픽 참관이니 하는 이야기는 배부른 사람들, 돈을 어디다 써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반가운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북한의 배고픈 동족이나 이산가족들에게는 신경질 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분단의 아픔을 아는 대통령이라면 한마디라도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해 주는 조항을 엮어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아무리 북한 체제를 상대하는 회담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동족의 현실을 감안한 어떤 실질적인 합의를 한 가지라도 도출해 내고 합의 성명에 포함시켰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국민의 지도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대단하게 인권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고, 체제 비판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아는 대통령과 각료들이라면, 이런 기회에 북한 주민의 삶에 대한 어떤 배려라도 한 가지쯤은 구체적으로 성사시키고 와야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겨울이 가장 지내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땔 것이 부족한 사람들의 겨울을 생각해 보면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짐작할 것입니다. 그러한 동족을 두고, 금강산 관광이니, 백두산 관광이니, 북경 올림픽 참관이니 하는 이야기는 무심한 소리를 넘어 잔인한 소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 관광 사업이 북한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고 믿는 분이 있다면 그는 북한을 전혀 모르는 분일 것입니다. 그동안 쌀을 공급하고 경제를 지원하였다면 그것이 북한 주민들의 삶에 확실한 도움이 되도록 조건을 달고 대책을 세워 합의하고 수행하였어야 했습니다.
남한 사회에서 그토록 요란하던 의식화라는 것이 남북 관계에서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의식화 되었다는 진보주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알맹이 없는 북한 접촉을 하는 덕택에 남한이나 외국에 나와 있는 국민들은 북한지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를 흔들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동족을 돕던 민간후원 단체들마저 지원 모금이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북한지원은 북한 동족지원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나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실제적인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지 북한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북한 동족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너무나 크고 또한 너무나 오래되었습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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