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7-10-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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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종달새 울음 운다

‘바람결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세상 만물은 당신의 숨결로 생명을 얻습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깨닫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 노을이 지듯 내 목숨이 스러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북미 인디언 수우족의 기도문 중에서)
은총 충만한 땅! 풍요로운 대지와 감미로운 바람, 빛나는 햇살로 빤짝이는 잎 새들의 춤사위, 그 속을 아름다운 정령들과 함께 뛰놀던 이 땅의 주인들.
진실로 이 땅의 주인이었으되, 이제는 주인 아닌 주인들.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컬럼버스는 스페인 왕에게 이런 서신을 보냈다고 합니다.
‘전하, 이들은 아주 평화롭고 유순해서, 전하께 맹세하오니 이보다 더 나은 백성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며, 말은 부드럽고 상냥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벌거벗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아주 훌륭합니다.’
북미 인디언 종족들 중 수우족, 일명 노랑 종달새는 다코타, 와이오밍, 몬태나, 네브래스카주들에 걸쳐 있는 광활한 평원을 넘나들며, 들소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던 유목민입니다.
그들은 또 아름다운 영혼과 자연 속에서 발견된 뛰어난 삶의 지혜를 가진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침상에 누워 있는 나이 든 추장과 그 딸의 대화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살아 있음은 초가을 황혼 물결 스치는 바람소리 같고, 밤에 날아다니는 불나방의 번쩍임 같고, 한 겨울 들소가 내쉬는 숨결 같은 것이며, 풀밭 위를 가로질러 달려가 저녁노을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작은 그림자 같은 것이란다,’
금강경이란 불교경전의 마지막 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현상계(삶)의 조작된 법은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이슬이요, 번개와 같다. 반드시 이와 같이 봐야 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인간이 지닌 욕구는 삶의 원동력이 되지만, 삶의 본질을 살펴 부질없음을 알고, 만 가지 악의 뿌리가 되는 무분별한 탐욕은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이렇듯 그들은 풍요로운 마음과 자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 드넓은 땅을 오가며 평화롭게 살아갔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며, 뒤처진 영혼들이 따라붙기를 기다린다는 그들은,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종족은, 오래 전 이 땅에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노란 종달새들 울음 운다. 울어, 울어 울음 운다.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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