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10-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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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준비

10월에 들어서더니 하루 사이에 날씨가 겨울을 향해서 곤두박질친다. 캘리포니아에서 20년 이상을 살다가 사계절이 확실한 콜로라도로 이주한 후 두 번째 맞게 되는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직은 낮 최고기온이 70도까지 오르내리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지만 아침, 저녁은 벌써 40도 정도로 수은주가 뚝 떨어진다. 지난해에도 10월 중순쯤에는 첫눈이 내렸던 것 같다.
겨울은 많은 것을 준비하게 한다. 한국에서야 월동준비라면 김장김치 담그는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이곳에서는 김장준비 대신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여러 가지다. 오늘은 잔디 깎는 기계와 정원 도구들을 대강 닦아서 창고 안쪽으로 넣고, 대신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눈 청소 기계(Snow Blower)와 눈 치우는데 필요한 장비들을 내어놓았다.
지난해 이곳에는 10월말부터 눈이 엄청 많이 왔다.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콜로라도로 이주한 첫해 겨울 신고식을 아주 제대로 한 셈이었다. 하루 밤사이에 1미터 가까운 눈이 내렸던 날도 있었다. 차도 길도 모든 것이 눈에 잠겨서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며칠 동안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곳에 오랜 산 이웃들도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기는 아마도 1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온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서 자동차 냉각수를 부동액으로 갈아넣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타이어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스노체인도 꺼내놓았다. 다음 주에는 겨우내 벽난로에서 때울 통나무 장작을 한차 주문해야 한다.
아내는 아내 대로 겨울철에는 집안 밖으로 공기가 건조해서 피부가 상하는 일이 많다면서 겨울 피부를 관리하기 위한 로션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모두들 나름대로 월동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준비된 삶은 아름다운 삶이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얼마나 준비를 착실히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
준비와 관련해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이다.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지혜로운 여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차이는 한쪽은 남편이 도착할 때까지 사용할 등불 기름을 미리 충분히 준비했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서 잘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지만,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던 처녀들은 부족한 기름을 사러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해 혼인잔치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비참한 운명이 되었다.
월동준비는 한 겨울을 따듯하게 살기 위한 준비다. 하지만 한겨울 월동준비보다 더 중요한 준비는 죽음 뒤에 다가올 영원한 일들에 대한 준비이다.
물론 사후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소용없는 일들이겠지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믿는 크리스천에게는 이 보다 더 중요한 준비가 없는 것이다. 준비된 삶이 아름다운 것처럼, 천국 혼인잔치를 위해 잘 준비된 죽음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리라.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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