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집엔 새록새록 역사가 숨쉰다

2007-10-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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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데일 한의사 영 씨 집

미국인 의사 직접 설계, 아내는 헐리웃 스타
1955년 이그제미너지 ‘아이디어 홈’ 선정
리모델링 권유하지만 역사 그대로 두고파

켜켜이 쌓인 시간, 오랜 세월의 힘은 의외로 강력했다. 만일 그 집에 그런 숨어 있는 히스토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저 지어진지 오래됐지만 깔끔한 공간 정도로 여겼을 테니까. 글렌데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도 낯설 만큼 외진 곳에서 찾은 ‘뷰 크레스트 길(View Crest Rd.)’을 따라 오르면 도착하는 한 의사 영 씨의 보금자리. 산꼭대기로 이어진 듯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가야 도착하는게 꼭 담 높은 부잣집들이 모여 있는 한국의 성북동 길 인양 친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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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당시 ‘올해의 집’(House of the year)으로 선정된 이 주택의 현재 주인인 한의사 영 씨가 거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현관 앞에 서니 글렌데일 지역과 LA 다운타운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끝내준다. 게다가 공기 좋고 조용하고 한적하니 ‘베케이션 홈’이 따로 없겠다 싶어 부러움이 한가득 이다.
끝내주는 전망 못지않게 커다란 관심을 끄는 건 이 집에 얽힌 흥미진진한 히스토리. 시쳇말로 뒷얘기가 재미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이 집은 미국인 부부가 홈 오너였는데 의사인 남편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했다. 부인은 마지아 딘(Margia Dean)이 라는 유명 여배우였다고, 또한 이 집은 LA 지역에 발행되던 인테리어 잡지 이그제미너지 1955년 10월호에 ‘IDEA HOME’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해 이미 그 옛날부터 멋진 공간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한의사 영 씨는 두 번째 주인, 직접 집을 지음 홈오너로부터 집을 구입했는데 처음 와서 둘러보자마자 바로 ‘우리 집이다’라는 느낌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첫 번째 집 주인이 데코레이션해 두었던 몇몇 가구와 소품까지 함께 구입해 지금까지 신주단지 모시듯(?) 잘 모시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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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마다 인터폰·물살조절 풀… 50년전 지은 집 맞아?

“사용하던 가구에서 옛날 잡지에 소개된 이 집 사진과 스토리가 발견돼 숨겨진 히스토리를 알게 되었지요. 게다가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가 이분들에 대한 추억담도 하나 둘 들려주셨고요. 그래서 이곳이 보통 예사로운 집이 아니구나 싶었죠”
이 집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알게 된 후부터는 집주인 닥터 영씨는 주변의 엄청난 권유에도 불구하고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의 리모델링은 모두 마다했다. 불편한 곳이 있거나 너무 낡은 곳만 조금씩 손대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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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뚫어 집을 지을 자리를 마련할 때 쏟아져 나온 화산 석으로 꾸민 출입구 벽면. 옛날 스타일 그대로 보존되어 멋스럽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당지 홈 매거진에 이 집은 최신 유행의 ‘모던 컨템포러리 스타일의 하우스’로 소개되었는데 지금은 주방의 손때 묻은 타일 아일랜드와 산길을 뚫어 길을 낼 때 나온 붉은 화산 석으로 액센트를 준 거실의 벽면, 집안 곳곳에 놓인 처음 주인부터 지금까지 사용해 온 오래된 가구 덕분에 공간 전체에 앤틱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 당시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느껴지는 ‘플로어 플랜’(floor plan). 매스터 베드룸부터 욕실 통로를 거쳐 다이닝룸과 거실까지 모두 오픈되어 답답한 느낌이 없는 데다 모두 수영장이 있는 뒤뜰과 직접 연결되도록 커다란 통유리 창을 설치해 요즘 한창 유행인 지중해 스타일 하우스 구조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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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 수영장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근사해 파티 장소로도 그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의 지구 온난화를 예견해(?) 부실마다 설치한 에어컨, 최신 유행 키친에나 어울리는 아일랜드 주방과 다이이닝 룸으로 연결되는 탁 트인 구조, 앤틱 쇼에 출품해도 될 만큼 오래 사용했지만 지금까지도 멀쩡한 오븐과 스토브, 매스터 베드룸과 리빙 룸에 설치된 인터폰, 욕실마다 자연광이 들어오게 설계한 독특한 천장, 집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는 스피커, 월풀 기능과 물살 세기 조절까지 가능한 수영장 등등 요즘 지어진 럭서리 콘도나 최신 시설 주택과 비교해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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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탁 트인 구조로 연결된 다이닝룸. 오픈 플로어 플랜 역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전 주인의 선견지명이 느껴진다.>

“올해로 이 집에 산 지 18년째인데 살면 살수록 이 집을 지었다는 그 첫 번째 주인 할아버지가 너무 존경스러워요. 그래서 저희가 사는 동안만큼은 있는 그 옛날 스타일 그대로 보존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홈오너가 쓰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앤틱 서랍장 위에 달린 앤틱 시계가 최근들어 30분마다 종을 치는 바람에 조금 성가시지만 그것 역시 그대로 두려한다면 활짝 웃는 집주인의 미소가 이 집에 얽힌 히스토리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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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주방을 그대로 보존했다는데 요즘 최신 주방 못지않게 타일로 마감한 아일랜드와 바 스타일의 캐주얼 다이닝 테이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글 성민정, 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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