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7일간의 휴가

2007-09-29 (토)
크게 작게
한국 가는 비행기 표를 끊고 큰 아이 학교는 언니에게 부탁을 하고 승욱이는 기숙사의 헬리마에게 부탁을 했다. 헬리마는 기꺼이 토요일에 있는 승욱이 스피치를 자신이 직접 데리고 가 주겠다고 했다. 뭐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십시일반 도와주니 그래도 사는 것이 덜 힘든다.
7년만에 7일간의 휴가, 시아버님이 위독하여 한국을 가는데 왜 이리 머릿속에서는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 동안 마음속에 접어놓았던 친구들, 선배 그리고 후배, 동네친구, 교회친구, 동창생까지 이름 하나 하나가 이마 위로 지나간다. 미국 와서 첫 해는 왜 그리도 한국을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는 비행기만 봐도 ‘저 비행기 타면 한국 가나?’ 그러면서 누구도 만나고 싶고 누구도 만나고 싶고를 손으로 꼽았었다. 그런데 체류문제로 영주권을 기다리면서 한국 가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고, 영주권만 나오면 다음날로 한국을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친정아버지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셨기에 차일피일 미뤄온 한국 행이다.
주변 분들이 고향 방문을 10년만에 했느니, 20년만에 했느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뭐한다고 그리 한국을 못 갔을까 의아해 했지만 내가 미국에서 살아보니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가 한국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나에겐 더 그랬다.
한국으로 가려고 짐을 싸는데 마지막 한국을 떠나오며 아버님과의 통화가 생각이 난다. “아버님, 승욱이 눈 수술이 길으면 6개월 걸린데요. 좋은 소식 가지고 갈께요. 그때까지 몸 건강히 평안하세요” 그랬던 그 며느리가 아버님과 약속의 6개월을 14번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도 아버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
정말 가까운 친구 몇 명에게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이 운다. 내가 한국을 가는데 왜 친구들이 우는 걸까. “이번엔 진짜 오는 거지? 기집애, 우리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 친구들을 한국 가서 볼 수 있을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약속을 잡고 난리가 났다.
아, 이렇게 한국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반듯하게 키워서 초라하지 않게 그리고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시간에 쫓기고, 금전적으로 힘들 때 그리고 아이들도 못 데려가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여러가지 착잡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12시간을 가는 내내 잠이 오지 않는다. 휴가를 위해 지난 며칠간 야근을 해서 몸은 피곤한데도 눈은 말똥 말똥이다. 아버님을 뵈면 뭐라고 말씀을 드릴까(이미 아버님은 말씀을 잘 못하신다고 했다). 하늘을 날아가며 7일간의 휴가 중에 하루를 써 버렸다. 시간이 아까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가슴이 부풀어서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 보고싶은 얼굴이 너무 많아 눈이 감겨지질 않는다. 다들 많이 변했겠지. 시댁 어른들은 어떻게 뵐까. 한국을 떠나 올 때의 내 모습과 많이 변해 다들 놀라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12시간을 다 소비했다. 드디어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을 하고 있다. 계절의 마지막 비인지 또 다른 시작하는 비인지 알 수 없는 비가 마구 퍼붓고 있다. 새벽이라 아직도 주변은 캄캄한데 활주로의 불빛은 마치 오래간만에 귀향하는 나를 반기는 듯하다.
한국냄새 가득 들이 마시고 기합 한번 넣고 당당히 앞으로 전진. “어이 안녕 남편, 언제 나왔어?” 키 작은 남자가 목을 쭉 빼고 까치발을 들고 서 있다. 그 남자가 바로 승욱이 아빠다. 난 그 남자와 남은 휴가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