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전인자가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

2007-09-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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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성격·생김새 결정
엄마·아빠‘판박이’로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제일 먼저 손가락, 발가락이 제 숫자대로 달려 있는지, 신체상의 이상은 없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엔 누구를 닮았는지 이목구비를 찬찬히 훑어 보게 된다. “넓은 이마는 아빠를 닮았고, 도톰한 입술은 엄마를 닮았고, 빳빳한 머리카락은 외할아버지를 닳았네? 너, 멀리 못 갔구나. 그래 우린 가족인 거야!” 엄마 쪽을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성장한 후 어느 날 문득 차 뒤를 돌아보면 거기에 ‘작은 남편’이 앉아 전자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고 아빠 쪽에서도 반대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와 조상을 닮게 만드는 유전인자, 그게 정말 아기의 운명을 좌우하는 걸까? 유전인자가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 <정석창 객원기자>

지문·우울증·당뇨병 등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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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유기체는 조상의 복합체이다. 귀는 엄마를 닮고 눈은 아빠를 닮고 발가락은 할아버지를 닮는 식이다. 모습뿐 만아니라 성격, 기질까지 유전된다.>

새로운 시대의 중심 나팔수 ‘유전 공학’으로 인해 유전자의 파워가 그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지만 유전자와 환경이 어떻게 밀접하게 작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호한 실정이다. 유전적 형질은 눈동자의 색상과 모발 색상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나 영감 등의 개인적인 기질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판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질이나 모습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단순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 바깥으로 표출되므로 “유전자가 한 인간됨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 유전학 교수 조앤 보두타교수는 말하고 있다.
유전자 지도인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인간은 10만 여개의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게놈지도가 완성된 지금은 인간의 유전자는 2만5,000여개에 불과하다는 것이 거의 밝혀졌다.
이는 한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재개시키기도 하고 폐쇄시기키도 하면서 서로 상호 보완작용을 함으로써 과학자들이 원래 추론했던 것보다 적은 숫자의 유전자로도 인간의 모습과 형질, 특질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형질이 강한 것들
키, 체지방, 지문, 우울증,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타입 2 당뇨

■유전형질이 중간인 것들
혈압, 최고 심장박동 수, 오목한 턱, 지능, 수줍음, 열 잘 받는 기질, 기억력, 좋아하는 음식, 타입 1 당뇨

2만5천여개 유전인자 복합작용
좋아하는 음식·색상까지 영향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닮는다
유전은 주로 우성과 열성의 법칙으로 내려간다. 갈색 눈동자가 우성이고 파랑 눈동자가 열성이다. 아빠의 눈동자가 갈색이고 엄마의 눈동자가 블루라면 갈색눈동자의 아기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또한 완벽한 추론은 아니다. 엄마 아빠 모두 블루 눈동자인데도 갈색 눈동자 아기가 태어나기도 한다.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유전형질에 겉으로는 블루 눈동자이지만 안에는 갈색 유전자가 깔려있을 때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고 애틀란타 에모리 의대 케이트 가버 박사는 말하고 있다.
모발 색상도 마찬가지이다. 아빠가 우성인 갈색 머리이고 엄마가 열성인 금발이라면 자녀는 모두 갈색 모발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들의 손자대에서는 금발이 돌출할 수 있다. 또 빨강머리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우편 배달부’를 의심할 일도 아니다. 유전자는 단수로 작용하지 않고 복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기의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는 전혀 돌연변이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례로 아빠는 흑인이고 엄마는 백인인 경우 첫 번 아기는 히스패닉같은 갈색피부를 하고 태어났지만 둘째 아기는 흰 피부, 금발에 파랑 눈을 가져 부모의 한쪽이 흑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경우도 있다.
이외에 아이가 자란 후 대머리가 될 때 대부분 아버지 쪽에 눈을 흘길 확률이 많지만 사실 엄마 쪽에서 건너온 유전형질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 견해이다.
비록 부모를 많이 닮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래도 완전히 유전형질을 비켜 간 것은 아니다. 연구에 의하면 비록 모습은 달라도 가족은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화났거나, 놀랐거나,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등에서 표정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은 21가족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했는데 가족 간에는 80%가 상황에 따른 얼굴표정이 흡사했다는 것이다.
또 유전자끼리 정확하게 복합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아기의 뒷머리 가마가 시계반대 방향으로 나 있으면 왼손잡이일 확률이 높은데 이는 머리카락 방향을 결정하는 인자와 손놀림을 결정하는 인자가 같이 작용하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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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배합은 우성과 열성의 법칙에 의해 그 모습이 나타나지만 유전자 교합이 복합적이라 반드시 이 법칙의 지배만 받는 것은 아니다.>


■성격도 닮는다
권위적이고, 독립적이고, 까다로운 성격, 심리적인 기질도 유전이다. 이는 일난성 쌍둥이의 경우 자란 환경과 형편이 다른데도 수십 년 후 만나보면 성질이 비슷한 것에서 여러 번 증명됐다. 손녀의 모습을 한참 지켜본 친정어머니가 웃으면서 딸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격, 기질이 유전된 데서 기인하고 있다.
여기에 좋아하는 색상, 음식도 유전인자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쓴맛에 예민한 아기는 어릴 때부터 우유나 물보다는 소프트 드링크나 시리얼을 더 선호하는데 이는 단맛 때문이다.

■환경이 유전자의 운명을 능가할 수도 있다
음정이 정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음이 정확한 친척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음과 유전의 관계이다. 그러나 음정이 정확한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6세 전에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9세 이후에 음악교육을 받은 사람의 3%정도만이 음정이 정확하다. 이는 환경이 유전인자만큼 중요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지난 50년간 인간의 평균 IQ는 증가했다. 이는 조기교육 덕분이지 인간 내부의 두뇌 유전인자가 진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IQ가 좋은 아기가 태어날 확률이 높은데도 임신 중 음주와 흡연을 한다면 아기의 IQ는 저하되기 쉬운 것도 환경이 유전인자를 능가하는 한 예에 속한다. 그리고 입양된 아기를 성장 후에 보면 생모와 생부의 기질도 닮아있으면서도 양부와 양모의 기질도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유전인자에 환경이 덧입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전자로 건강문제를 예견, 방지할 수 있다
부모 한쪽에만 혈우병이나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 있어도 다음 세대는 반드시 이 병에 걸린다. 50세 전에 타입 2 당뇨를 앓는 부모를 둔 자녀가 이 병에 걸릴 확률은 7분의 1이다. 체지방도 유전될 가능성이 많은 형질이므로 이런 부모를 둔 아이는 어릴 때부터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피부암에 결렸고 모발이 딸기처럼 빨간 금발 아이라면 선스크린을 부지런히 발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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