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 삶 - 평범한 신앙인이 꿈꾸는 종교간 화합

2007-09-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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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한다. 종교는 신앙과, 정치는 신념과 직결돼서, 이성적으로 판별하여 합리적 토론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 종교가 그야말로 혼란스러움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말 절대자가 있다면 ‘노아의 홍수시대’를 다시 연출해서라도 말끔히 씻어내고 싶으리라고 여겨질 만큼 오늘의 종교 체제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부패하고 있다고 보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비교종교학이나 특정 교리를 연구해서라 아니라 요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종교가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때 신앙인이 가질 수 있는 회의와 좌절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가톨릭 LA대교구가 7억달러가 넘는 돈을 성추행 성직자와 희생자들 사이의 합의금으로 내놓기로 동의했다. 오랫동안 끌어온 재판과 마호니 추기경의 증인 출석 요구 바로 전에 합의된 것으로 더욱 논란이 됐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금욕은 그 법을 바꾸지 않고는 깰 수 없는 근본 강령일 텐데,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욕구든, 습관적 행패이든 관계없이, 개인 성직자는 물론이고 그 문제를 책임지고 다루어야 하는 가톨릭 교회 전체에 문제점이 있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지적 사항이다. 그리고 또한 그런 이슈들을 조용히-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보였다-넘어가는 신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보고 싶다. 가톨릭교는 그 부와 조직과 역사가 방대해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무적의 종교인가?
개신교 또한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의 자질과, 교파들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 동역자들이 사역자들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힘겨루기와 세력 다툼을 일삼는다. 또한 각 교회가 외양과 교세 확장에 더 힘쓴다는 일반적 양상에 신앙인들조차 다 식상해하고 있다.
한국 불교계 또한 파벌간 다툼이 빈번하고 모범이 되고 있지는 못하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에서 유래한 종교지만 기독교와는 어우러질 수 없는 유일신의 창시 종교로, 아직도 남성 위주의 전근대적인 사상으로 현대사회와는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파벌간 싸움이 극심한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거의 대부분 문명국가가 보장하듯이, 신앙인들에게는 어불성설이겠지만, 서로의 다른 종교를 우선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도 네 개나 되는데, 누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우스운 이야기이겠지만, 지구에 간빙기와 빙하기가 교체되어 왔고, 지금의 간빙기는 지구 온난화로 더 길어질 것이라 한다. 만약 우리가 믿는 하나님(또는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부터가 아니라, 간빙기에 인간이 출현했을 때에 비로소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맹목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이겠지만, 생각의 폭을 넓히고 보편타당의 평범한 논리를 갖고 종교를 본다면 그렇게 대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제한적인 지적, 영적, 물리적 능력으로 종교의 탄생은 불가피하고, 우리는 절대자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각 종교가, 한계 상황의 인간을 진리와 양심과 진실의 추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와 영적 지도에 몰두한다면 어느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든 관계없이, 우리 평범한 신앙인들은 인생에 던져진 영적 화두에 몰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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