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고사리 손

2007-09-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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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짜리 승욱이의 손을 보았다. 너무 보드랍고 예쁜 손을 가진 승욱이. 일곱살 정상인 남자아이들의 손은 흙도 만지고, 연필을 쥐어서 힘이 있고, 블럭 같은 것을 쌓아서 섬세한 손을 만들어 갈텐데 승욱이는 정상 아이들같은 섬세한 손놀림이 부족하니 여태까지 손이 여리디 여린 아기 손을 가지고 있다. ‘아들아, 너무 예쁜 손을 가졌는데 이 손을 가지고는 앞으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다.’
승욱이 손가락의 소 근육을 발달시켜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낸 중에 하나가 피아노 치기이다. 집에는 전자 건반을 누르는 피아노가 있는데 건반이 너무 부드러워 진짜 피아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마음 같아선 멋진 그랜드피아노를 한 대 장만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승욱이가 제법 피아노를 치게 되면 장만하리라는 큰 꿈을 안고 피아노 가게를 운영하시는 집사님에게 가게에서 제일 싼 중고 피아노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사님이 너무 놀라시면서 괜찮은 중고피아노를 꼭 필요한 분께 드리려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생각하던 분이 피아노를 가지고 가시지 않겠다고 해서 보관하고 있는 피아노를 어쩌나 걱정하던 참에 나에게 승욱이 연습용 피아노 얘기를 들은 것이다.
생각하고 결정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당장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 물론 내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은 지불을 했다.
피아노 의자에 승욱이를 앉혀놓고 옆에서 내가 피아노를 치니 얼굴에 신기함이 가득하다. 초등학교 때 체르니까지 친 실력으로 찬송가를 쳐 주니 승욱이 생각에는 엄마가 실력있는 피아니스트급으로 여겨지나 보다.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는 내 손 위로 승욱이가 자신의 고사리손을 올려 놓았다. 엄마가 건반을 틀리게 누르던 어쩌던 좋아서 계속해서 나에게 피아노를 치게 한다. 피아노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난 승욱이의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위에 올려 주었다. 손가락 끝으로 건반을 누를 때마다 ‘딩’ 소리가 나니 겸연쩍은 미소를 나에게 짓는다.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날은 승욱이와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데 이렇게 체계없이 엄마가 대충 피아노를 가르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엄마가 가르쳐주니 은근히 꾀를 부리며 의자에 앉혀 놓은지 10분이면 바닥에 앉아 피아노 페달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으니 선생님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는 중에 ‘앗! 바로 그분이야 그분, 그분께 부탁해 보자.’
같은 교회를 다니는 자매님께 승욱이의 피아노 레슨을 부탁했더니 기꺼이 가르쳐 보겠다고 당장 시작하자고 했다.
승욱이의 피아노 레슨이 처음 있는 날, 꼬박 40분을 앉아서 힘없는 고사리손을 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아이가 얼마나 신기한지. 언제나 큰 기대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면 기대를 갖게 만드는 아들 승욱이. 선생님은 7세 정도 정상 아이도 40분을 집중하고 앉아 있기 지겨워 하는데 승욱이는 건반도 보이지 않고, 악보도 볼 수 없고, 소리도 얼마나 듣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저 선생님의 손을 의지해서 치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지 얼마 후, 흐느적거리던 승욱이의 손가락에 제법 힘이 생겼다. 소근육의 발달을 시켜주기 위해 시작한 피아노로 인해 승욱이가 피아니스트가 되면 어쩌지? 생각만해도 경사났네, 경사났어.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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