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 케롤라인이 있는 신나는 병원

2007-09-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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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얼마 전에 다친 나는 2개월에 걸쳐 동네 병원을 장 보러 다니듯 드나들게 되었다. 집을 짓고 있는 중인 아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정원에 까는 커다란 돌판들이 순식간에 내 손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한 내 새끼손가락이 보기 좋게 으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글로 표현하기에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손톱과 샘솟는 피를 보고 알아차린 나는 응급실에 가 여러 가지 진단과 치료를 받고 그 다음날로 손 전문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가꾸는데 소홀해져 버린 나이지만 그래도 손가락 하나가 완전히 모습을 잃은 모습에 내 마음도 함께 으깨어진 것 같았다. 아프기도 아프지만 치료를 위해 붕대를 풀 때마다 망가진 모습에 다시 충격을 받고 마음이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손이 다시 돌아올지 의문을 갖고 다니기 시작한 손 전문병원에서 만난 물리치료사 케롤라인.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12년 만에 다시 만난 절친한 친구처럼 반겨주었다. 나를 언제나 반겨주고 내 손을 보며 함께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그 모습만으로도 슬픈 나의 손의 반은 치유된 것 같았다. 손에 약을 발라주며 그리고 어떻게 붕대를 감고, 보호대를 어떻게 착용해야 되는지 자세히 알려주며 오래된 친구처럼 그렇게 케롤라인은 내 마음의 부러진 손가락부터 치료해 주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녀는 자기 환자들을 모두 친구라 부르며 너의 경우는 그래도 뼈마디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웃으며 말을 건네주었다. 아이가 셋인 케롤라인은 아주 건강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였다.
캐롤라인이 처음 보호대를 만들어준 날, 나는 집에 돌아와 그녀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보호대 위에 작은 눈알을 아이와 함께 붙였다. 그리고 눈알이 달린 보호대에 “쪼꼬”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이와 나는 슬픈 손가락을 즐거운 손가락으로 만들어 친구하기 시작했다. 안녕! 쪼꼬. 그리고 그 다음 케롤라인을 만났을 때 어김없이 나는 나의 귀여운 쪼꼬를 소개하였다. 쪼꼬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너무 좋아하는 케롤라인의 모습에 나도 다시 한 번 웃으며 나는 이 쪼꼬의 이름과 뜻을 알려주었다. 쪼꼬는 ‘조그맣다’라는 우리말을 재미나게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눈이 달려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며 좋아하는 케롤라인은 내가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칭찬도 해주었다. 조금씩 나아지는 내 손가락 모습에 함께 기뻐하며 다음 차례인 모양이 다른 새 붕대 감는 법을 알려주고 그녀는 잊지 않고 새 붕대를 한 아름 선물로 쥐어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진실된 눈빛은 나뿐만 아니라 이 병원에 오는 다른 아픈 친구들에게도 행복한 치료가 될 것이라 생각되어졌다.
모든 아픈 사람들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치유되어져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마음을 훌륭하게 치료하는 케롤라인이 일하는 신나는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모양이다. 내 손가락이 걱정되어 따라온 남편이 케롤라인을 보자마자 말했다. 당신의 행복한 에너지가 문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고.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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