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감사 실종사건

2007-09-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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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몇 날 며칠을 가마솥에서 푹 고아만든 곰탕 같은 진국인 친구가 있다. 고1때부터 친구니 20년 지기 친구이다. 오래간만에 친구의 이메일이 감사실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친구 M은 내가 승욱이를 낳기 전에 급성 고혈압으로 신장을 일주일에 세번 투석해야 하는 아픔이 있는 친구이다. 내가 미국에 온 후에도 친구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얼마나 믿음이 대단한지 난 명함도 내놓지 못할 친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4년간의 신장투석을 하고 있는 중에 친구가 신장이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병원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 대충 짐을 싸서 병원으로 갔지만 설마 자신의 신장조직과 맞는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하게 간 병원에서 똑같이 연락을 받고 온 다른 대기자들이 있었고 거의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수술실에 들어가서 이식을 받은 사람은 내 친구 M이었다.
젊은 청년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뇌사상태에서 여러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들었다. 남들은 10년을 넘게 투석해도 이식 받기가 힘든 일인데 내 친구 M은 4년2개월을 신장투석 후에 이식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게다가 조직이 맞는 몇 명의 대기자들 중에서 내 친구였다니. 이 얼마나 값진 선물을 받은 것인가.
2004년 부활절 아침에 내 친구는 건강한 신장을 이식 받아 오늘까지 건강하게 선교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친구의 이메일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난 요즘 선교원 재롱잔치 연습이 한창이다. 아이들과 함께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면서. ㅋㅋㅋ 아~주 볼만 하단다. ㅋㅋㅋ 이렇게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단다. 행복이란 것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하루 24시간을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예전에 투병생활 할 때는 일주일에 세번 내가 원하지 않은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퀭하니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올 때 버스 창문으로 비춰진 내 모습이 싫어 창문을 깨뜨리고 싶기도 했지.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 그저 눈뜨니 아침이고 숨쉬니까 그냥 살아가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모른 채. 늘 감사하며 살아가자. 평안하렴!”
내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은 ‘하루 24시간을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실 때 깨달은 것이었는데 내가 잊고 있던 사실을 친구를 통해 또 깨우치게 되다니 놀라울 뿐이다.
난 직장에 취직도 했다.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가족 같은지 매일 만나도 그저 반갑고 좋은 분들과 일하게 되었다.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주변 환경도 좋고,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울 일이 있을 때는 배려를 해주시니 직장 다니는 엄마로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승욱이도 기숙사에서 잘 지내고, 학교도 정상적으로 잘 다니고, 큰아들도 7년만에 엄마를 독점하게 되어 말 잘 듣고, 친정엄마도 간병 일을 열심히 하시고 계신데 의외로 내 입에선 불만과 불평이 나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저 눈뜨니 아침이고 숨쉬니까 그냥 살아가고’라는 친구의 글처럼 요즘 내가 그리 살아가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뜰 수 있음에 감사하고 숨쉬며 건강함으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되찾는 ‘나’로 돌아가련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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