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종원·태전 부부의 동유럽 배낭여행기 <2>

2007-09-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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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태전 부부의 동유럽 배낭여행기 <2>

헝가리 부다페스트도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박종원·태전 부부의 동유럽 배낭여행기 <2>

메주고리 성모 발현지 정상의 십자가 앞에서. 이곳에 오면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자기 마음을 성찰하게 된다.

애먹은 환전… 전철표 못사 벌금까지

성지 메주고리 은행들
여행자수표 환전 안해
현금없어 외상 민박도

자그레브에서 호수 관광을 끝내고 마지막 오후 6시 버스를 2시간여 기다리는데도 도무지 나타날 줄을 몰랐다.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서 자초지종 이야기하니 독일계의 65세 정도의 친절한 분이 5인승 차에 6명을 태우고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오는 도중 10년 전 전쟁 흔적으로 아직도 고치치 않은 탄환구멍이 군데군데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자그레브를 뒤로 하고 성모 발현지에 가기 위해 모스타르로 11시간 밤기차로 이동하였다. 아침 8시께 도착하니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은행에 돈을 환전하기 위해 들어가니 여행자 수표는 받지 않고 현금만 바꿀 수 있단다. 이곳까지 오면서 현금은 거의 바닥나고 여행자 수표만 가졌으니 난감하였다.
차선책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려고 하니 여권의 이름과 카드의 이름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하단다. 보통 중간 이름은 한 단어만 기재하여 사용해도 미국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나 이곳은 국제금융 신용도가 낮아서 수표 받기를 거부한다는 설명이었다. 다행히 교통비와 이삼일간 잠 잘 현금은 있었기에 다음 도착지에서 바꾸기로 했다.
메주고리 성모 발현지로 오는 도중 버스에서 1년이면 두 번 정도 이곳에 와서 마음 수련을 하고 간다는 신학생을 만나 첫날 숙소는 현금을 찾게 되면 지불하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도착한 날이 토요일 오후라 은행과 환전소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마음씨 좋은 민박 할머니의 우리에 대한 신뢰가 과연 성지의 주민이구나 함을 새삼 감사하게 느꼈다.
이곳 메주고리는 높은 지대로 아마 마운트 볼디(Mt. Baldy) 높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지 않겠나 생각되었다. 예상 밖으로 5월께엔 좋은 날씨에도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온단다. 번개 동반에 장대 같은 비가 아침행사 참석를 막았고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비를 피하느라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한국 장마철의 추억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과연 성지 마을로서 관광객을 상대로 선물점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자기 마음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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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는 성지 마을이라 관광객을 상대로 선물점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환전할 수 있는 월요일 9시까지 기다려서 은행에 들어가니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아 언제 업무가 개시될지 모른단다. 참 난감한 순간이었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한 은행, 한 환전소밖에 없다. 우체국은 현금만 환전한다니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할 수 없이 개인 환전소가 10시에 연다고 해서 기다렸다.
다행히도 이곳에서는 여행자 수표를 바꿔줄 수 있단다. 물론 수수료가 엄청났지만 환전을 하고 나니 만군이 부러울 것이 없었다. 당장 맛있다는 유명 식당으로 가서 이곳 특유의 음식이라는 것을 시켜 먹었는데 맛이 별로 없어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민박 할머니에게 숙박비를 드렸더니 자기가 손수 빚었다는 1리터짜리 와인을 주시고 자기가 만들었다는 묵주를 각각 우리 부부에게 주었다.
불행히도 스물세 살 자기 딸이 있으면 손님들의 언어문제가 없을 텐데(그 딸은 영어, 소련어를 잘 한단다) 불행히도 자동차 사고로 2~3년 전에 죽어서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세계 각국에서 성지를 둘러보기 위하여 오는 관광객들의 열기로 나의 얄팍한 신앙심도 조금 살찌워지는 것을 뒤로 하고 두브로니크(Dubronik) 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아드리아 해로 시가 담배 물고 코믹 연기하는 번스타인이 이곳을 보지 않고 죽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일화를 남긴 곳이라 한다. 해안가로 버스가 꼬불꼬불 물 옆을 지나는 경치는 청량음료를 마시는 시원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2번 국경선을 통과하면서 양쪽 국경선의 관리들에 의해 세관, 보완 그리고 비자를 점검 받는 일만 없으면 청량한 마음으로 확 트인 바다에 푹 빠질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곳 역시 몇 세기인지는 몰라도 안전 구축을 위하여 돌 성벽을 높이 쌓고 오래된 성당에도 현재 미사가 진행되는 관광거리가 있었다.
또한 우리가 주로 배낭여행을 했기에 이곳도 역시 버스 종착지에 도착하니 민박하는 사람들이 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피 튀기는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곳을 지나오니 거의 하루 평균 숙박비가 얼마라는 기준이 세워져서 그에 맞춰 바가지 쓸 염려는 안 해도 되는 안도감을 얻었다.
또 한 가지 아직도 질서가 잡히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소피아, 부크레슈티에서는 직접 매표구에서 침실표를 사지 않고 여객 승무원에게 30% 정도 흥정해서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덤으로 즐겼다.
하지만 인간 사는 것이 돌고 도는 원칙에서 크게 멀지 않다는 것도 체험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본의 아니게 공짜 지하철을 탔는데(티켓 사는 것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들어갔다) 지하철 바꿔 타는 길을 몰라 경비원에게 물었다가 전철 표가 없는 것이 발견되어 50달러 상당의 벌금을 냈다.
전철표 1장이 20센트 정도, 벌금 내고 기차 침대칸 싸게 타고, 이것이 뺏기면 또 보상길이 열리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행동과 생활의 범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맛보았으며 떠나기 전 미지의 여행을 우리 부부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으로 떠났으나 집에 돌아올 때는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떠날까 하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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