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들여다 보기 - 청소년 셀폰 중독

2007-09-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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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서며 새로운 중독증이 또 하나 생겼다. 셀폰 중독이다.
사람들은 셀폰을 새로운 담배라고 부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거나 일하는 중간에도 탁하고 열어젖힌다.
‘셀폰 브레이크’를 하고, 운전하고, 걸으면서도 채팅하는 것을 보면 담배 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셀폰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조차 없으니, 사람들의 셀폰 의존성이 중독의 위험을 예고하는 빨간 깃발 같다.
그런데 셀폰 중독의 대다수는 틴에이저다.
셀폰은 아이들에게 어떤 특권의식을 주고 자기 가치를 높여준다.
메시지를 많이 받으면 인기가 좋고,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으면 자신이 더욱 가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틴에이저가 잠잘 때도 셀폰을 손에 쥐고 잠든다. 자다가도 메시지에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셀폰 중독은 비약물적 중독이지만, 그 증상은 마약이나 알콜, 흡연 중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의존증이 진행된 아이들의 셀폰에 대한 집착은 거의 병적이다.
하루라도 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심하게 불안하고 초조하고 집중이 안 되며, 우울해지고, 가만히 있어도 메시지 도착음의 환청, 즉 유령 전화벨을 듣게 되는 금단현상까지 경험하게 된다.
셀폰 중독이 되기 쉬운 아이들은 주로 수줍고, 사교적이지 못하고, 자긍심이 낮은 아이들이다.
또 긴장과 우울증, 부적응증으로 이미 불안정한 정서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다.
셀폰 안에서는 사람을 직접 만나 사교하지 않아도 즉각적인 소속감을 갖게 해주어, 자신의 존재감과 중요성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금 뚱뚱한 여학생은 전화나 컴퓨터로 채팅하기 좋아한다.
상대방 채팅 파트너는 주로 실제 삶에서는 잘 듣지 못하는 나이스한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질풍노도와 같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청소년기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때이다.
친구들과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피드백을 얻으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독립성을 가진다.
반면 여전히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의존성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정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셀폰을 통한 ‘간접적 대인관계’에 더욱 의존하면서 직접 맺어야 할 인간관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이것이 현대의 테크놀러지가 주는 셀폰 중독의 패러독스이다.
가족의 끈이 느슨해지는 요즘, 지나치게 셀폰에 매달리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순수한 관심과 이해이다.
일등을 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돈 벌어야 한다는 논지를 가득 실은 잔소리형 대화와 비현실적인 기대에서 오는 좌절된 욕구불만의 질책이 많아질수록 아이는 셀폰이 주는 피상적인 인간관계 속으로 도피하고 싶어진다.
거기선 즉각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셀폰을 손안에 쥐고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문자를 두드려 날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 야단칠 생각보다 내가 부모로서 아이와 순수한 공감의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자.
애정과 격려가 있는 건강한 가족관계를 맺는 것이 아이의 셀폰 중독을 막는 지름길이다.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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