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8-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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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부모의 미래,
부모는 자녀의 현재

미국 땅의 한인 부모 대부분은 이곳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모국어를 잊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만일 유창하면 금상첨화구요.
게다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고, 최근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기관의 하나인 골드만삭스가 2050년의 세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이 미국에 이어 제2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라면, 자녀들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는 단순 애국심을 떠나 그들의 장래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도 분명히 고려될 부분일 것입니다.
저 또한 아직 초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딸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애국심이라는 표면적 명분과 자녀 경쟁력이라는 이면의 노림수를 둘 다 충족시키는 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주변의 1.5세 및 2세라 불리는 자녀들을 관찰한 결과,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아이들조차도 고급 한국어라 하기에는 2%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바로 속담이나 격언, 사자성어 구사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봄, 한국을 다녀오면서 책방에 들러서 딸아이가 초등학생임을 감안하여 ‘만화로 배우는 속담, 격언, 사자성어’ 책을 잔뜩 사다가 안겨 주었습니다. 별 관심도 안 보이는 아이에게 갖은 감언이설을 동원해 그 책을 꼭 읽을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잦은 출장에, 바쁜 업무 일정으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거실에서 아홉살이나 많은 언니와 잘 놀던 둘째 딸아이가 뭔가 의견 충돌이 생겼는지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둘째 딸아이 왈, “언니는 바담 풍해도, 나는 바람 풍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두 아이의 표정이 가관이었습니다. 큰 아이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고, 둘째 아이는 자기가 말해 놓고도 제대로 사용한 건지에 대한 긴장감이 잔뜩 배어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잠깐 동안의 적막을 깨면서 저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언니가 틀리고 자기가 옳다는 말을 강하게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속담 만화에서 본 그 말이 생각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담이 사용된 상황이 조금은 황당했지만, 제가 사다 준 책을 읽고 속담을 사용했다는 것이 기특해 둘째 아이 편을 들어주고 호들갑을 떨면서 칭찬을 해 주었더니 기고만장해서는 그 다음부터는 수시로 속담을 사용하는 재미가 들렸습니다.
‘남산도 식후경’ ‘빈수레가 시끄러워’ ‘값도 모르면서 싸다한다’ ‘호랑이는 굴에서 잡는다’…. 어슴푸레 생각나는 대로 대충 떠벌려서 주변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합니다. 아이의 얘기는 아빠한테 칭찬을 받으려고 제 방에서 그 만화책을 수시로 읽는데, 읽다보니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미래요, 부모는 자녀의 현재입니다. 현재가 없는 미래는 없겠지요. 아마 조금 지나면 둘째 아이는 적절한 때와 상황에 아주 능숙한 속담과 사자성어들을 구사할 것입니다.
언어문제가 그럴진대, 생각과 행동 양식은 어떻겠습니까?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교육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나눔과 베품의 실천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의 미래는 인색하고, 자기 중심적인 틀 안에 구속될 수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또 자기의 모습대로 그들의 자녀를 가르치겠지요.
어제 저녁, 최근 사자성어 구사를 향한 새로운 도전에 나선 둘째 아이가 엄마가 정성껏 차린 식탁에 앉으면서 폼 나게 내뱉은 한마디가 우리에게 최고의 저녁을 제공했습니다.
“와우! 이거 만수성찬인걸!”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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