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40분간의 행복만끽

2007-08-25 (토)
크게 작게
IEP 미팅에서 힘겹게 싸운 와우이식 전문스피치가 6개월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수업은 선생님 집에서 토요일에 아침 9시부터 하기로 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승욱이가 선생님을 잊지는 않았을까 수업은 다 까먹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목을 조르고 끌어안고 완전 이산가족 상봉의 시간이었다. 수업도 마치 지난 주에 수업을 마치고 이번 주에 온양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척척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하니 선생님은 신이 났다.
승욱이의 스피치 시간에 난 옆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수업을 열심히 참관을 한다. 선생님이 승욱이에게 말 연습을 시키면 내가 옆에서 입을 벌리고 갖은 모양을 다 만들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민망할 정도다. 승욱이가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면 괜히 내가 안타까워서 한숨을 내쉬니 선생님이 은근히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욱이가 엄마인 내가 옆에 있으니 꾀를 부리고 수업 중간에 더듬거리며 나에게 오니 자꾸 수업이 진행되지 않아 수업을 시작하고 40분간은 내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40분간을 멍하니 차에 앉아 기다리려니 지루하기도 하고 시간도 가지 않아서 동네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승욱이의 스피치 시간이 매주 토요일 아침이다 보니 동네에 거라지 세일, 무빙 세일 하는 집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미국에 산지 8년이 되어가지만 시간도 없고 토요일 아침에 동네를 배회할 일도 많지 않아서 거라지 세일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한 주 두 주 돌아다니다 보니 구경하는 것에 꽤 재미가 붙게 되었다. 게다가 승욱이가 수업을 하는 동네가 샌개브리엘이라는 동네인데 올드타운으로 너무 운치도 있고 중산층이 사는 곳이라 거라지 세일하는 물건도 꽤 쓸 만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승욱이를 내려놓고 난 별다방(스타벅스) 커피를 한잔 사서 동네를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며 큰 아들 책을 사면서 “1달러에 책 3권 주세요”라고 흥정도 하고, 승욱이가 좋아하는 흔들의자를 건지기도 하고, 소리나는 장난감도 간간이 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지나간 비디오테입도 아주 저렴하게 구입을 하다 보니 매주 토요일 아침이 나에게 너무 행복한 시간이 된 것이다.
10달러 미만으로 예산을 정해 놓고 매주 토요일 아침 샌개브리엘 동네를 40분 안에 돌아야 하니 이젠 얼마나 바빠졌는지 모른다.
때론 ‘거라지 세일’이란 큰 화살표를 보고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면 골목골목이 얼마나 복잡한 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또 너무 허접한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내 생각에는 쓰레기통에 들어갈 물건들의 총집합) 팔고 있는 것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지난 주에 다른 거라지 세일에서 만난 동네 주민도 만나게 되고(마치 내가 그 동네 주민인양 행세를 하다니), 좋은 물건을 싼값에 사면 기분 좋아 싱글벙글하고, 괜히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40분간의 행복 만끽을 하고 승욱이가 수업하고 있는 곳에 돌아오면 좋은 물건을 건진(?)날은 괜히 배시시 웃고 앉아 있고, 별 성과가 없는 날은 입을 쭉 내밀고 앉아 있으니 선생님이 내 표정을 보고 뭔 일이 있냐고 자꾸 묻는다.
“아니, 그냥 너무 행복해서” 그 말에 선생님은 승욱이의 수업에 만족하는 줄 알고 더 신나게 가르치지만 난 속으로 ‘이런 재미, 이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요. 알면 다쳐요. 호호호’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