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예술과 국권

2007-08-24 (금)
크게 작게
1974년 3월, UC버클리의 크로커 교수와 A. D. 킬머 교수, R. R. 브라운 교수 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를 해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시리아, 즉 지중해 연안의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기원전 1800년께의 점토판에 새겨진 악보를 읽고 연주하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의 연구가 밝혀낸 것은 이미 고대 아시리아-바빌로니아에 음악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해석한 지금부터 4,000년 전 음악이 현대 서양음악의 특징과 똑같은 7음계와 온음계로 되어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이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을 우리는 수메르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을 남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정치, 건축, 예술, 기술, 천체물리학까지 현대인들이 가진 지성과 문화에 버금가는 수준을 가지고 삶을 향유했습니다.
버클리 고고학 팀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서양음악이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원전 2,000년께에 벌써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사람들이 현대 음악의 특징을 그대로 가진 음악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도리가 없어졌습니다. 실제로 크로커 교수는 우르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수금을 재현해서 그것으로 현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2,000년께 기록을 보면 일관된 음악 이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고, 킬머 교수는 수메르와 그 계승자들이 풍부한 음악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은 신에 대한 찬양으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이 문명의 출발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메르인의 문명과 음악이 왜 인류의 시야 속에 갑자기 사라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관해서는 고고학자들의 견해가 각각 다르지만, 대개는 야만인들의 침공, 혹은 대홍수 같은 천재지변, 그리고 신들의 분노 등으로 가늠합니다. 그렇다면 그 훌륭했던 문명과 문화가 야만인, 혹은 천재지변, 혹은 신의 분노 등에 견디지 못할 정도로 취약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아무리 문명과 문화가 뛰어나고 훌륭해도 그것을 지킬만한 국가적인 힘이 없을 때, 문명과 문화는 단절되고 지하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문명이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실제로 현대 음악사를 보면 음악사 최초의 페이지가 바흐로 시작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알만 한 사람은 다 알지만 그것은 독일이 음악사를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음악사를 기록한다면 이탈리아 오페라의 성악으로부터 시작해야 마땅하지만, 지난 200여년 동안 독일이 유럽의 문화를 지배하면서 국권이 약한 이탈리아 성악을 음악사에서 제외하고 독일의 종교음악과 기악을 먼저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탈리아 성악의 전성시대에 독일 음악이 받은 푸대접에 대한 보복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비단 음악만이 아닙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고, 모든 학문이 그렇습니다. 국권이 뒷받침될 때 그 민족의 학문과 예술이 역사 속에 살아남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전 예술과 문화가 우리 자신들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진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국권이 이를 귀하게 뒷받침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와 예술이 중요하고 또 그것이 민족의 혼을 담아내는 것이지만, 또 반면에 나라의 힘과 경제를 지키고 길러내는 일도 바로 그 문화를 살리는 길이기도 한 것입니다.
신이 준 것으로 기록된 수메르 문명과 문화가 6,000년이 지나도록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서구인들에 의해서 발굴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