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 자연의 섭리 속에 깨달음

2007-08-18 (토)
크게 작게
두레마을에는 닭, 거위, 기러기, 토끼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전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 지내게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풀어놓고 자유롭게 지내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을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제 마음이 착해서 울타리를 해체한 것도 아닙니다. 울타리를 쳐 놓으면 늘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가끔씩 굶기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울타리를 해체해 버리면 먹이를 주지 않아도 자기들이 풀 있는 곳이나 땅에 있는 수많은 씨앗들을 먹으며 알아서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울타리를 해체해 버렸던 것입니다.
동물들은 각각 다양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데 닭은 몇 년전 어느 분이 두레마을에 몇 마리를 주었는데 그것들이 알을 낳고 병아리를 까게 되어서 작년에는 100마리를 훌쩍 넘어섰던 것 같습니다. 이 닭들은 얼마나 빠른지 가끔 매가 그것들을 잡아먹으려고 쫓아도 잡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뿐만 아니라 개들의 습격에 놀라 날아갈 때가 있는데 날 때면 보통 50미터 가량을 새처럼 날아가기 때문에 평소에 닭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닭들이 많아지자 그것들이 사는 영역을 넓혀 길가로 나가기도 하고, 이웃집까지로 영역을 넓혀 아예 이웃집에서 사는 녀석들도 생기게 되어서 두레마을 식구들과 밤에 나무에 올라가 잠자는 녀석들을 몇차례에 걸쳐 수십마리 잡아먹는 야만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올해 들어 봄이 되자 닭들은 또 알을 여기저기에 낳기 시작했고 그 알들을 어디에서 품는지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몇마리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이곳 저곳에서 알을 품는 닭들을 발견하고는 알을 꺼내려다가 어미닭의 반발에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미닭들은 알을 품는 동안 먹지도 물을 잘 마시지도 않는 답니다. 가끔 고양이가 나타나도 날개를 아래로 내리펼치면서 위협하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공격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달 전쯤이었을까요. 우연히 창문을 열다가 창문 아래 대나무숲 속에 기러기가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얼른 가져다 모아두었다가 두레식구들과 나누어 먹었을 텐데 닭들이 알을 품는 때이기도 해서 그냥 놓아두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을 열고 기러기를 내려다보는 것이 제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일상의 즐거운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아침뿐만이 아니더라도 궁금하면 창문을 열고 보게 되니까 자연히 기러기와도 가까워지게 된 것 같았습니다.
10일이 지나고 20일이 지나가면서 기러기 새끼를 언제 보게 될까 하는 설렘과 바람이 커져가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30여일이 지났을 때에는 기러기 새끼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기러기 어미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속에서 커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기러기는 알을 품는 동안 단 한번도 먹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뜨거운 한낮에도 알을 품고만 있는 것입니다. 가끔 밖으로 나올 때도 있긴 한데 그 때는 땅바닥에 떨어진 마른 대나무 잎이나 풀들을 알위에 얹고는 또다시 품는 것입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몸의 털을 주걱처럼 투박하게 생긴 부리로 뽑아다가 알위를 덮기도 하고 둥지 주변까지 하늘의 뭉실구름을 옮겨다 놓은듯 개미의 침입으로부터 알을 까고 나오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새벽의 찬 기운으로부터 알을 따뜻하게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주변을 만드는 것입니다.
30여일이 지나자 기러기 새끼들이 어미의 도움을 받아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아장아장 엄마의 뒤를 따라 걷는 새끼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렇게 새끼를 나오게 하기까지 오랜 시간 한곳에 머무르며 알을 품은 어미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미기러기의 오래 참는 구도자와 같은 모습은 제 자신의 인내없음을 질타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인내함으로 새로운 생명의 창조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어미기러기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없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조규백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