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2007-08-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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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가 있는 패션

트렌드 리더가 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조건이라면 위트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트렌드 세터들에게는 ‘저걸 도대체 어떻게 입고 거리를 활보하라는 거야’라며 경악하는 아이템(예를 들면 하이 웨이스트 팬츠나 우비에 다름없는 페이턴트 코드)을 척 하니 입어주는 용기와 배짱은 요구하기가 오히려 쉽다. 그러나 패션에서 위트랄까 유머랄까 하는 것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 위해선 그냥 눈 딱 감는 용기 정도가 아닌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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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함의 대명사지만 옷과 액세서리 모두 번뜩이는 위트로 트렌드 리더들의 사랑을 받는 샤넬이 올 가을 컬렉션에서 선보인 수트와 핸드백.  


존 갈리아노나 지방시, 발렌티노처럼 여체의 아름다움을 미니멀리즘 혹은 극단적인 페미니즘으로 승화시키는 이들은 패션계에선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자신의 패션세계에 위트를 불어 넣은 디자이너를 보기 쉽지 않다는 것만 봐도 위트가 결코 쉬운 영역이 아님을 눈치 챌 수 있다. 아마 이는 위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패션 구매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자칫 싸구려처럼 보일 수 있는 위트가 오트 쿠튀르와 공존하기 쉽지 않아서 일게다. 그러나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할머니를 비롯, 알렉산더 맥퀸, 마크 제이콥스 같은 재기 발랄한 디자이너들의 의상에선 간혹 그 위트라는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비비안 할머니는 스코틀랜드 격자무늬를 이용해 간혹 자신의 정치적인 발언까지 일삼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알렉산더 아저씨는 흑백의 대조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은 대담무쌍한 유머를 구사한다.
‘패션계의 영원한 오빠’ 마크는 디자인과 컬러 모두 위트에 있어선 단연 최고봉이다. 페미닌한가 하면 보이시하고 너무 단조롭지 않은가 싶으면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뿐인가. 블루와 바이올렛, 플럼 컬러를 자유자재로 매치하는 걸 보면 정말 천재지 싶다. 그러고 보면 위트의 오리지널 브랜드는 샤넬로 임명하고 싶다. 퀼티드 재킷에 커다란 꽃 장식이나 수천달러가 넘는 핸드백에 어쩐지 키치(kitsch·통속적이고 촌스런)한 냄새가 나는 단추며 장식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폼이 예사롭지 않다. 코코 샤넬에서부터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 이르기까지 샤넬이 클래식한 브랜드로 사장되지 않고 젊은 여성들에게까지 사랑 받는 이유도 아마 이 위트 덕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샤핑 길에서 베시 존슨(Betsy Johnson)의 황금과 크리스털이 범벅된 귀고리와 팔찌를 사는 한 트렌디한 20대 여성과 눈길이 얽혔다. 살짝 민망한 듯 그녀가 말한다. “재밌잖아요.” 맞다. 패션은 재밌어야 한다. 지금이 로코코나 바로크 시대도 아니고 속옷에서부터 머리 장식까지 옷 입는 순서를 지켜 입어야 하는 시대도 아닌 바에야 패션은 입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에게도 간혹 재미를 선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굳은 ‘신조’다. 물론 매일 매일을 이렇게 입는다면 한국 동네마다 한 명씩 있다는 머리에 꽃 꽂은 여자 취급을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길.
검은 블랙 드레스엔 진주 목걸이보다는 ‘섹스 앤 시티’의 캐리가 했듯 커다란 쇼킹 핑크 장미꽃을 왼쪽 가슴에 척 달아주거나, 비록 10달러짜리 탱크 탑이라도 그 위에 진주 목걸이와 체인을 함께 매치해 아방가르드한 느낌을 살려준다거나, 크롭트 울 팬츠와 같은 색상의 체크무늬가 들어간 뉴브 보이 캡을 써 준다거나 하는 작은 디테일들이 다 위트다.
오늘, 당신의 패션 유머를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답은?. 바로 당신 안에 있으니 너무 힘들어하지는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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