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빚진 자

2007-08-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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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P 미팅에 참석했던 선생님들이 모두 방에서 나가고 교감 선생님인 엘리와 내가 남았다.
그렇게 엘리와 마주앉아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승욱이를 낳았을 때 너무 당황했었죠. 장애아를 낳았다는 충격감에 너무 힘이 들었어요. 석달 열흘을 꼬박 울기만 했어요. 앞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 반, 볼 수 없을 거란 절망 반으로 하루하루를 사는데 아이는 무럭무럭 너무 잘 자라는 거예요. 저에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너무 예쁜 아이였어요. 정상이지 않은 눈조차도 사랑스러워졌죠. 난 아이를 업고 비를 맞고, 눈을 맞고, 바람을 맞으며 서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알고 싶었죠.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공부를 해야 했어요. 책을 보니 너무 오래된 책들 그것도 외국 논문이나 자료를 번역한 것이 고작이었어요. 시각장애 학교에 책을 부탁하기도 하고 여러 기관에 전화도 무지 걸었죠. 하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가 없었어요. 그리고 미국을 오게 되었죠. 기회가 주어져서 각막수술도 UCLA에서 받았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너무 늦게 왔다고 했어요. 결국 눈 수술은 실패를 했고, 그 후에 아이가 귀도 전혀 듣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눈을 못 본다고 했을 때보다 더 절망스러웠죠. 아이를 데리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어요. 키울 자신이 없었죠. 전 장애아이를 키울 만한 인격도 능력도 되지 않는 엄마거든요. 나의 힘으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승욱이를 도와줄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되었어요.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승욱이를 도와주신 분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승욱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너무 작아요. 느리다 못해 너무 더딘 아이를 저 혼자 키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키우기까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빚, 기도의 빚, 물질의 빚, 격려의 빚, 관심의 빚, 가르침의 빚까지 너무 많은 빚을 지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승욱의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 또 빚진 자로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저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승욱이를 이만큼 키우지 못했을 거예요. 승욱이만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승욱이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좋은 모델이 되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어요. 모든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아이들이 겪지 않게 저는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때론 욕도 먹게 되고 무례하게 보여질 때도 있습니다. 승욱이만 잘 키우려 했다면 전 이 학교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더 좋은 사립학교를 찾아갔겠죠. 하지만 승욱이만 그렇게 특별하게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또 다른 승욱이가 이 학교로 올 겁니다. 왜냐하면 승욱이가 잘 적응하고 좋은 서비스와 좋은 선생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줄 테니까요.”
엘리 선생님의 얼굴이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첫 케이스로 언제나 선두로 달려가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난 언제나 책임감이 든다. 언제나 더 많이 생각하고 언제나 더 많이 고민하고 언제나 더 많이 힘든 결정을 하며 간다. 내 뒤로 오는 부모님들은 부디 나보다 조금 쉽게 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빚진 것을 갚는 길인 걸 알기 때문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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