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구정물통과 회개

2007-08-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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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지만, 옛날에는 부엌 근처에 으레 ‘구정물통’이 놓여있었다. 요즘에야 개량된 부엌 시설로 주부들이 설거지하는 동안에 더러운 물은 즉시 싱크를 통해 하수도관으로 흘려내려 보내고, 음식 찌꺼기는 옆에 부착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그러나 옛날에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구정물(더러운 물)과 음식 찌꺼기를 일단 옆에 놓여있던 구정물통에 담아 놓았다가 틈이 나면 하수구에 가져다 버렸다.
그러다 보니 부엌 근처에 놓인 구정물통에는 주부가 버린 콩나물, 김치 쪼가리, 멸치 대가리, 먹다 남은 밥 찌꺼기가 물 속에 떠다니거나 가라앉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구정물통 주위에서는 파리 떼들이 들끓곤 했었다.
그런 구정물통도 밤새껏 그대로 버리지 않고 놔두면, 음식 찌꺼기들이 가라앉아 이른 아침이면 제법 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항아리 안에는 여러 층이 되어있다. 위에는 맑은 물이고 중간층은 약간 흐릿하고 밑에는 온갖 찌꺼기들이 가득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어떻게 보면 이런 구정물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매일 잡다한 인생 삶을 살다보면 꼭 좋은 일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기분 나쁜 일도 생기고 그렇다 보면 자연히 싫은 감정, 미워하는 마음, 시기, 질투, 갈등, 부러움, 탐욕, 거짓 등 온갖 감정들이 마음 안에 쌓여가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콩나물 대가리나 김치 쪼가리 같은 지저분한 찌꺼기가 아닐까? 그리하여 마음 안을 항상 탁하게 만들고,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은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 찌꺼기를 가득 찬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날을 살면, 죄악이 파리 떼처럼 달려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정물통은 방치하면 물이 썩고, 악취가 진동할 수밖에 없다. 냄새를 없애려면 통에 든 오물을 전부 쏟아버려야 한다. 그런 후에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더러운 삶의 찌꺼기들이 마음 안에 가득 차서 죄악의 악취가 진동하면, 지저분한 삶의 찌꺼기들을 마음에서 버려야 한다. 그리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회개’다. 그렇기에 진정한 삶의 회개는 ‘세례’와 ‘성령’의 삶을 의미한다. 성령은 씻어낸 맑은 물의 새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정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로 통을 씻는 일이 별개의 일이 아니고 하나이듯이, 죄악에서 벗어나는 일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똑같이 일어나야 할 ‘진정한 회개’의 정신이다. 지나간 삶의 잘못을 뉘우치며 가슴을 치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고, 죄악을 저지르며 살 수밖에 없었던, 잘못된 인생 길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며 사는 바른 길로 들어서는 것이 회개라는 말이다. 잘못 들어선 것을 알고 나서도 빨리 바른 길로 들어설 생각은 않고, 길을 잘못 들어선 자신의 과오만을 뉘우치며 괴로워한다면 가야 할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개는 한번 해서 끝나는 일회용이 될 수 없다. 계속 음식 찌꺼기가 버려지는 구정물통처럼, 마음 안에 버리고 씻어야 할 삶의 찌꺼기가 계속해서 쌓여가기 때문이다. 세례 받을 때와 사순절 때 뿐만 아니라, 회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전 생애의 끊임없는 ‘새 사람’ 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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